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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EAful May 19. 2021

4. 아침이 있다는 것

빨간머리 앤 홍차 인문학 4

눈부신 세상 ; The world on a morning


잠에서 깬 앤의 눈앞에 펼쳐진 아침은 어제의 절망 같은 현실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든다. 삐걱거리는 창문을 열고 반짝이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바라본다. 앤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나의 집, 나의 공간에서 처음 바라보는 바깥세상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앤의 집, 앤의 방이다.


"Don’t you feel as if you just loved the world on a morning like this?"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을 맞았지만 오늘 마주한 아침은 앤에게 햇살로 곱게 치장한 눈부신 세상을 열어준다. 앤이 힘차게 나아가야 할 세상이자 앞으로 만들어야 할 세상이다. 



차 마시는 시간


지금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하지만 어렸을 때는 만화영화라는 이름이 더 친숙했다. 만화영화에는 종종 차 마시는 장면이 나왔는데 차 마시는 시간을 알려준 것은 자동차 경주대회 만화였다. 대회에 출전한 영국인 선수는 경주 도중에 3시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차를 세우고 집사가 준비한 홍차를 마셨다. 매우 당연하게 그리고 아주 여유롭게.



식사와 함께하는 것 외에도 이른 아침에 침대 위에서 편안히 마시는 Early Morning Tea, 오전 11시경에 머핀, 스콘, 비스킷 등 비교적 간단한 티푸드와 함께 마시는 Elevenses Tea, 샌드위치를 선두로 유혹적인 티푸드를 가득 곁들이는 Afternoon Tea 그리고 잠들기 전에 마시는 Night Tea 외에도 테이블에 앉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차와 함께 할 것 같다. 



상상의 나쁜 점 ; Hurt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꿈을 꿀 수 있지만 꿈은 영원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꿈에서 깨는 순간이 온다. 결국엔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상상도 마찬가지다. 


"The worst of imagining things is 

that the time comes when you have to stop and that hurts."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눈부신 세상이 펼쳐져 있어도 앞만 보고 살 수 없다. 등 뒤에도 외면할 수 없는 세상이 있다. 앤의 상상은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마릴라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끝난다. 1층으로 내려가서 아침을 먹고 나면 바라만 봐도 행복했던 눈부신 세상을 걸어가야 한다. 비록 목적지는 절망일지라도.




아침차 


Breakfast Tea

단식을 깨는 아침식사 차라고 해야겠지만 굳이 아침차라고 부르고 싶다. 에일(Ale)을 식탁에서 밀어내고 아침식사와 함께 차를 마시도록 유행시킨 사람은 앤(Queen Anne, 1665년~1714년, 재위 기간 1702년~1714년) 여왕으로 알려져 있다. 초록지붕 집의 앤과 이름이 같은, 끝이 'E'가 있는 앤 여왕은 브랜디를 찻잔에 마시거나 차에 브랜디를 섞어 마셨기 때문에 Brandy Nan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영국은 앤 여왕의 재위 기간 중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의회가 합병(1707년, Act of Union)하여 Great Britain을 형성한다.


English Breakfast Tea

Breakfast Tea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분명 English Breakfast Tea다. English Breakfast Tea는 일반적으로 중국, 아삼, 실론 및 케냐 홍차를 블렌드 하여 만든다. 이 차를 최초로 블렌드 하여 이름을 붙인 사람은 명확하지 않다.


일설에 따르면 영국식 아침차는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헐(Hull)에서 뉴욕으로 이주하여 작은 차 회사(Canton Tea Company)를 설립한 리처드 데이비스(Richard Davies, 영국의 약제상 출신)가 1843년에 새로운 블렌드를 개발했다. 당시 최고급으로 평가받은 중국의 복건성 홍차(China Congou)를 기본으로 하여 Orange Pekoe(또는 Flowery Pekoe)와 Pouchong을 배합하여 English Breakfast Tea라는 이름을 붙였다. 1파운드 당 50센트에 판매한 그의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유사품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영국으로 간다. 스코틀랜드의 차 상인이었던 로버트 드라이스데일(Robert Drysdale)이 1892년에 개발하여 사람들에게 아침에 마시면 좋은 차라고 홍보한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년~1901년, 재위 기간 1837년~1901년)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했을 때 이 차를 마시고 반하여 잉글랜드로 돌아갈 때 갖고 가면서 대중들에게 유명해졌고, English Breakfast Tea가 되어 유행한다. 


English, Irish, Scottish

English Breakfast Tea의 친구처럼 Irish Breakfast Tea와 Scottish Breakfast Tea가 있다. 분명 이름을 다르게 붙인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셋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침차를 마실 때는 우유나 설탕을 첨가하는데, 대체적으로 English < Irish < Scottish 순으로 맛이 진하다. 모두 여러 지역(아삼, 실론, 중국 및 케냐 등)의 홍차를 배합하지만 비율이 각기 다르다. English Breakfast Tea는 중국 홍차 또는 실론티가 중심이 되고, Irish Breakfast Tea는 아삼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Scottish Breakfast Tea가 셋 중 가장 진한 것은 짠맛이 느껴지는 스코틀랜드의 연수(soft water)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는 각 나라와 도시의 이미지를 입힌 여러 종류의 아침차가 생산되고 있다.   



창틀 위의 제라늄 ; Didn’t you give it a name?


앤은 매튜 아저씨와 함께 오면서 완벽에 가까운 행복을 느꼈던 그 길을 마릴라 아주머니와 함께 되돌아 가야 한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스펜스 부인 댁으로 가서 남자아이 대신 앤이 초록지붕 집에 오게 된 이유를 묻기로 했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출발하기 전까지 밖에서 놀아도 된다고 했지만 앤은 아침이 만든 눈부신 세상 속으로 차마 나가지 못하고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창틀에 놓여있는 빨간 제라늄과 눈이 마주친다.


“What is the name of that geranium on the window-sill, please?”

“That’s the apple-scented geranium.”

“I mean just a name you gave it yourself. 

Didn’t you give it a name? May I give it one then?”


앤은 제라늄의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마릴라 아주머니에게는 그저 사과향이 나는 제라늄일 뿐이다.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제라늄의 이름은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그렇지만 앤은 아주머니에게 허락을 구하고 이름을 붙여준다. 이제부터 사과향이 나는 빨간 제라늄은 ‘Bonny’다. 빨간 제라늄의 꽃말은 ‘너로 인한 행복’, ‘진실한 애정’이다. 보니는 앤으로 인해 행복해질 초록지붕 집이자 앤을 진심으로 사랑할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다.  



소설 원문 : www.gutenberg.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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