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는 아니지만, 유일한 존재
불룩, 솟아오른 배를 볼 때마다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다음 검사까지, 근종의 크기가 조금이라도
줄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침저녁, 수시로 배를 살펴보지만
오히려 더 빵빵해진 것 같다.
기이한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 데다,
만지면 딱딱하기까지 한 배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자꾸 이만하길 다행이다.
절망하고 분노하지 말자, 하는데 쉽지 않다.
아침부터 기분이 우울한 데는
어떻게 해봐도 변함없는 배도 한몫했을 것이다.
게다가 대자연의 시작 일주일 전이라 그런지
눈치 없이 날뛰는 식욕 탓에
치킨이나 짜장면 같은
튀기고 기름진 음식이 자꾸만 당긴다.
건강이 이렇게나 안 좋은데도,
나는 참 쉽게 잊고, 쉽게 흐트러지는구나.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보는 것은 어려워한다.
드라마 작가를 꿈꿨을 때는 더 그랬다.
개연성 없이 마구잡이로 쓴 드라마를 보면 괴로웠고,
반대로 잘 쓴 웰메이드 드라마는
자꾸만 의기소침해져서 힘들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도 손이 가는 제목들이 있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클릭하고
읽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밀려오는 자괴감이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여러 개의 응원이 달리고,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고,
몇백 개의 좋아요가 이어지고, 구독자 수가 4천이 넘어가는 글들....
그 글들 앞에서
반응이 더디기만 한 내 글은 한없이 작아졌다.
이럴 때 나는 자주 '쓸모'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은 것은
‘쓸모' 있는 일인가?
내가 쓴 글을 과연 '쓸모'가 있는가?
그런 글을 쓰고 올리는
나라는 인간의 '쓸모'는 또 어떤가?
'쓸모'와 '자격' 문제는 항상 내 인생의 화두였다.
내가 어떤 것을 누릴, 혹은 원하고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항상 생각했고,
어떤 집단, 회사, 혹은 이 세상에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 수차례 묻곤 했다.
스스로에게 수시로 그런 질문들을 던졌다.
보통 그런 때는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진 때였기에,
해답 없는 질문들 앞에서
나는 한층 더 쪼그라들곤 했었다.
빨리, 그리고 많이 실패할수록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실패가 두려워 시도를 미루는 사람이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탓을 내 재능이 아닌,
아직 충분히 도전하지 않았음에 두고 싶었다.
우리 삶에서 각자 인생의 최종 목표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이 내 존재의 '쓸모'를 따질 때마다
큰 위로가 되곤 한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이미 나 자신이기에
그 앞에서 더 이상의 '쓸모'나 '자격'의 문제는
무용해진다.
오늘 내 글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나는 그 글을 오래도록 매만지며 봤다.
댓글에 쓰인 내 글의 '특별함'은
'특출남'이 아닌, '유일함'에 있다는 것을 안다.
자꾸만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고
채찍질하는 세상이다.
수시로 번호와 등수를 매기는 세상이다.
때로는 폭력이 되는 그런 말들 앞에서
우리 한 명 한 명, 모두가
이미 '최고가 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