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이 폭발했다.
대자연의 시계는 정확했다.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기분,
단 것, 짠 것, 기름진 것을
하이에나처럼 찾아 헤매는 식욕.
날뛰는 기분과 덩달아 날뛰는 식욕 앞에
달력을 펼쳐 헤아려보니,
역시나 대자연의 시간이 코앞이다.
다음 자궁 근종 검사까지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어? 혹시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는 팀장님이 고마웠지만
들려드릴 수 있는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근종이 꽉 차서 현재 상태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자세한 내용은 MRI 촬영을 해 봐야 안다는 말을 전했다.
“지금 당장 수술이 급하다는데, 검사를 또 그렇게나 기다려야 된다고?”
한참이나 미뤄진 검사 일정에 팀장님은 한층 더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나는 미뤄진 일정 동안
오히려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자궁근종 관련 유튜브를 보던 중,
실제로 수술 일정을 잡아두고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자궁근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례가 있었다.
그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환자도 의사도 알지 못했다.
다만, 의사가 추측하길 환자가
그즈음에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고,
아마도 그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 극한의 다이어트가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은 먹지 않았는지,
어떤 운동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의사였다면,
그런 사항들을 세세하게 묻고
기록해 뒀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뤄진 검사 일정 앞에
‘오히려 좋아’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심기일전해서
자궁 근종의 크기를 단 몇 cm라도
줄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극한의 다이어트를 통한
역전의 드라마는 커녕
대자연의 파도 앞에 속절없이 휘둘리다,
결국, 완전한 K.O 패를 인정하며
흰 수건을 날리는 것뿐.
몸에 안 좋은 밀가루와 튀김을 멀리하겠다는
다짐이 우습게도
나는 떡볶이도 먹고, 우동을 먹었으며,
간짜장과 짬뽕도 먹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달달하고 꾸덕한 초코케익을 시켰고,
맵고, 짜고, 달고, 자극적인 맛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매운맛의 끝판왕인 신쭈꾸미도 먹었다.
그 와중에도 건강에 대한 근심만은 여전했기에
유튜브에서 주야장천 건강 관련 콘텐츠를 찾아봤고,
이에 알고리즘이 급기야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명언으로
인도하시기에 이른다.
주말 근무로 얻은 황금 같은 대체 휴무일.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 가라사대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명언을
입으로는 줄줄 외면서,
오백 번쯤 먹을까 말까 망설이던,
떡볶이를 시켜서 철근같이 씹어 삼키고,
히말라야 산보다 넘기 힘들다는
내 집, 현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
침대와 한 몸이 되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곧 깨닫는다.
'아, 명언을 머리로 수용하는 것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구나....'
건강 유튜브에서 각 분야의 명의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자꾸 뭘 먹어야 병이 나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는데,
좋은 것을 먹는 것보다,
좋지 않은 것을 먹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곧 시작될 대자연의 시간이 두렵다.
부디 지난달처럼,
이번에도 큰 하혈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빌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이후부터는 속을 비워보기로
이제라도 늦은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