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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럭저럭 소소 Oct 29. 2020

결혼하는 딸에게

작년 가을 어느 날, 큰딸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나 이제 결혼해야겠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얘는 어느새 이토록 담대해졌을까.’ 딸의 말은 움직일 수 없는 선언처럼 들렸고, 그로부터 우리는 갓 태어날 ‘어떤 결혼’을 잉태하며 나날이 조금씩 걸었다. 남편과 나의 ‘결혼’으로부터 30년 동안 쌓은 모든 것들이 전면에 드러나는 시점이었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은 그야말로 ‘물(物)과 심(心)’을 총체적으로 동원하는 일이었다. 이 지상에 전에 없던 새로운 가정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게 어디 ‘경제’ 뿐이겠는가. 살아온 세월 한순간 낭비 없이 주고받았던 마음도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적립되어있다가 인출될 때를 맞는다. 자식을 둔 부부는 그 시점이 바로 자식이 일가를 이루려고 하는 때라는 걸 직감한다.

결혼 풍속도도 시대마다 달라지는가. 혼사를 치러 본 지인들은 “요즘 아이들은 똑똑해서 지들이 알아서 다한다, 부모가 할 일은 그저 입을 닫을 것, 단 주머니는 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고로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는 냄비며 그릇, 수저 같은 주방용품부터 이불이며 요, 베개 같은 침구,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청소기,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 장롱, 침대, 식탁 같은 가구들, 양가 어르신들과 가까운 혈육들을 위한 예단, 신랑 신부를 위한 폐물, 그리고 가장 덩치 큰 준비물인 집,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여정을 딸과 같이 겪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아웅다웅 서로 마음을 다치기도 하는 것, 그게 우리 세대의 결혼 풍속도였다. 그런데 요즘으로 말할라치면 각종 플래너들이 친정엄마를 대신한다. 딸과 친정엄마가 침구와 주방용품과 가구를 고르는 취향 때문에 아웅다웅 다툴 일이 없다. 모르겠다.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인지. 아무튼 딸은 제 짝과 함께 발품을 팔아 둥지를 구하고 새가 하나씩 모이를 물어 나르듯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자기 일없이 딸만 쳐다보는 엄마였다면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조금은 서운함을 느꼈지 않을까. ‘시중드는 권력’이란 말도 있듯이 어떤 엄마들은 자식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코로나 19로 세상이 난리가 나는 와중에도 결혼날은 차근차근 다가왔다. 신혼여행지로 고른 유럽 일대가 역병으로 국경을 폐쇄했다는 뉴스를 봤다. 딸이 상심할 것을 걱정했지만 딸은 의외로 늠름했다. 4월이 가고 5월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슬슬 청첩장을 전하기 시작했다. 누구를 만나고 살았는가 싶었다. 세상 사람들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경조사를 기꺼이 함께 나눌 인연의 두께를 보고 그 인생의 성패를 가늠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딸이 우리 몫이라며 준 청첩장의 부피가 곧 살아온 세월의 만만찮은 무게임을 실감했다. 그동안 멀고 가까운 인연들의 경조사에 성실하게 자기를 내어준 남편의 처세가 이럴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간다는 이 평범한 도리, 세상 사람들이 거의 다 아는 지혜는 언제나 재조명을 받을 때 새삼 감동스럽다. 우리가 어떤 것을 깨닫는다 할 때 그것은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오래된 새로움이다.

스물여덟의 딸이 결혼한다. 나도 스물여덟에 결혼했다. 나는 딸처럼 6년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결혼이란 걸 별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삶을 꿈꾼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결혼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할 수 있어요?” 어쩌다 결혼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가 사람들이 물으면 “남편의 이름이 대웅이거든요. 대웅전 할 때 그 ‘대웅(大雄)’이라는 이름에 꽂혔던 거죠.” 뭔가 약간 4차원 같은 답이기는 하다. 당시 나는 정말 ‘대웅’이라는 이름의 그 사람이 실제로 대웅(大雄) 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아보지 못할 뿐. 당시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소금인형’이라는 시도 한 달 만의 결혼에 영향을 줬다고 믿는다.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이 시가 쓰인 배경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시인이 인도 등지를 떠돌 때 만난 어떤 사두로부터 세 개의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돌로 만든 인형, 헝겊으로 만든 인형, 소금으로 만든 인형이 있다. 이 세 개의 인형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돌로 만든 인형은 아무 변화가 없었으며, 헝겊으로 만든 인형은 물을 흡수해 잔뜩 부풀었다. 그리고 소금으로 만든 인형은 바닷물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진리에 대한 추구도 이와 같으니, 어떤 사람은 돌로 만든 인형과 같아서 진리의 세계에 살면서도 전혀 진리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헝겊으로 만든 인형처럼 진리의 체험으로 자신의 에고를 잔뜩 채워 자만심이 더 커진다. 진정한 수행자는 소금으로 만든 인형과 같아야 한다. 진리를 체험하는 순간, 진리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녹아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스물여덟의 나에게 결혼은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소금인형의 용기였다. 결혼이란 내가 녹아 없어질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닐까. 결혼 생활 중 서로 삐걱대고 덜컹거리는 것은 모두 내가 녹아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지르는 비명이다. 그러나, 결혼하는 딸에게 그리고 사위에게 자신 있게 전한다. 내가 녹아 없어지는 만큼 바다의 깊이를 알 수 있다고. 작은 ‘나’ 따위를 녹여 없애는 것은 바다가 되어가는 기쁨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두려워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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