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월급쟁이로서 본분에 충실하여 회사에 충성하고 받는 월급 값은 해야 한다고 늘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들이부은 노력만큼 제가 회사로부터 대접받지는 못한다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조차 불이익을 당한다고 느낄 때 제가 착해서 이렇게 당하고 사나 아니면 멍청해서 그런가 자괴감이 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생활의 꽃인 연봉 상승이나 승진과 같은 큼직한 보상에서 미끄러질 때는 오히려 전쟁과 같은 치열한 경쟁 속에 저의 부족함을 챙기게 됩니다만...
최근에도 저의 심정을 긁어대는 사안이 발생했습니다. 어영부영 우물쭈물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당하는 형편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2년 반 간의 르완다 파견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 것을 철저히 챙기지 못하고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가만히 있어서 저들이 저를 바닥에 깔려 꼼짝 못 하는 가마니를 알고, 큰 소리를 치지 못하고 매번 그저 보자 보자 하니 아무 힘없는 보자기로 취급하는 것 아닌가 같은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사안은 자가격리비 지원에 관한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고 격리에 따른 직원들의 금전적인 부담을 완화해 주고자 회사에서 귀국 시 2주간의 자가격리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임시로 만들었습니다. 단 격리기간 중 휴가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격리기간 중 재택근무를 하나 휴가를 쓰거나 자가격리비 지원이라는 당초의 취지에서는 동일한 게 아닌 싶은데 회사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가 봅니다. 자가격리 기간에 꼭 업무를 봐야 지원해주고 비록 파견 생활 종료와 귀국 일정의 연장선상에서 유급으로 쓰는 데도 불구하고 휴가 지원은 못하겠다는 회사의 명분을 거스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의 처음 계획은 정식 발령일보다 2주 정도 일찍 귀국하여 7시간이나 되는 시차에도 적응하고 아프리카에서 쌓인 여독도 풀고 새로운 조직에 대한 준비도 할 겸 해서 격리를 빙자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위 회사의 자가격리비 지원 정책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가격리비를 지원받으려면 휴가를 포기하고 발령일까지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수행해야 됩니다. 휴가를 내려면 자가격리비 140만 원을 포기해야 됩니다. 아무래도 140만 원의 미끼로 빈틈없이 일을 시키려는 본사의 전략에 당한 듯합니다.
또 하나 제가 귀국한다고 하니 회사의 해외 수당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휴가든 자가격리 등 발령 전 사전에 입국하여 한국에 있는 기간은 일할 계산하여 수당에서 삭감한다고 합니다. 전에는 공식 발령일 전에는 수당 전액을 지급했었는데 누구의 농간인지 상당한 금액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규정에는 없지만 수당의 본 취지를 확대 해석하여 한국에 있는 기간에는 해외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만, 저로서는 야속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해외근무 중 한국에 귀국 휴가 가는 기간에도 역시 수당을 삭감해야 된다는 그렇지는 않거든요. 규정에도 없는 내용이고 전에는 적용된 적이 없는데 제가 2주 먼저 사전 입국한다니 이런 규정을 내세워 수당을 삭감한다고 하니 누가 봐도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이 험한 세상에 자기 것 잘 못 챙기고 사니까 제 인생이 늘 아슬아슬한지 모르겠습니다. 약게 처신하여 손해를 보지 않아야 잘 산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천성적으로 큰머리, 잔머리 구분 없이 잘 굴리지 못하는 게 매번 손해 보는 원인인 것 같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 제게 주어진 것이라도 잘 챙겨야 인생의 후반부가 그나마 평탄하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는 합니다. 그러면서도 태어나길 이리 태어났으니 약삭빠르게 머리 굴릴 생각일랑 일찌감치 포기하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기도 합니다. 어느 방향이 옳은지 아리송하기만 하니 누가 속 시원하게 정답 좀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1월 16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