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자리 비움, 현황판을 설치합니다."
김 부장의 이 한마디로 회사 생활의 자유는 완전히 사라졌다. 사무실 한쪽 벽에 설치된 화이트보드에는 직원들의 이름이 적힌 자석이 붙어있었고, '자리 비움', '회의 중', '외근', '화장실' 등의 상태를 표시하게 되어 있었다.
"이제부터 자리를 비울 때는 반드시 현황판에 표시하고, 돌아오면 바로 원위치! 모두 알겠죠?"
모두가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 부장의 목소리가 더욱 엄숙해졌다.
"화장실은 하루 세 번으로 제한합니다. 한 번에 5분 이내로."
그 순간 사무실이 얼어붙었다. 이수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늘 화장실에 자주 가는 편이었다.
"부장님······."
송 대리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왜?"
"화장실은 좀······."
"뭐? 일하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게 그렇게 중요해?"
갑자기 김 부장의 목소리가 천둥치 듯 울렸다.
더 이상의 반론은 없었다. 이제 그들은 기본적인 생리현상까지 통제받게 된 것이다.
이때 태호가 작은 쪽지를 건넸다.
[화장실 생존 팁]
아침 출근 직후 1회
점심시간 활용 1회
퇴근 직전 1회
※ 급할 때는 외근으로 위장
...
이런 팁이 필요한 현실이 너무나 씁쓸했다.
"어? 강 사원이 자리에 없네?"
이 차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현황판은?"
모두의 시선이 현황판으로 향했다. 민준의 자석은 '자리 비움'에 있었다.
"자리 비움의 시간이 몇 분이나 됐지?"
박 과장이 시계를 확인했다.
"7분이 지났습니다."
순간 사무실이 술렁였다. 민준은 그때 급히 복사실에서 뛰어나왔다.
"지금 몇 분이나 지났는지 알아?"
이 차장의 날카로운 질책이 날아왔다.
"죄송합니다······. 복사기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그게 변명이야? 이유가 어떻든 시간은 지켜야지!"
그날부터 모든 직원은 스톱워치를 차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리를 비우는 순간부터 초를 세야 했다.
점심시간 후, 이수진이 울면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저기······. 이수진 씨가······."
김동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가볼게요."
송 대리가 따라나섰다.
잠시 후 들려온 이야기로는, 이수진이 방광염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오후가 되자 새로운 규칙이 추가됐다.
"자리 비움 시 반드시 사유서를 작성하세요."
박 과장이 현황판 옆에 사유서 용지를 붙였다.
[자리 비움, 사유서]
시간 :
사유 :
예상소요시간 :
비고 :
이제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서류작업이 필요해진 것이다.
"저기, 과장님."
조심스럽게 태호가 물었다.
"왜?"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떡하죠?"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든가."
결국 그들은 서로의 자리 비움을 커버해주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누군가 급한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이 사유서를 대신 작성해주는 방식으로.
"띠링-"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화장실 타이머 작동 중······.]
이제는 이런 앱까지 깔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김 부장의 감시는 더욱 강화됐다.
"어제 CCTV를 확인해보니까······."
조회 시간, 모두가 긴장했다.
"자리 비움의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더라고."
CCTV로까지 확인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는 주간 보고서에 자리 비움 관련 시간도 포함하겠습니다."
업무 성과는 뒷전이고,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만 중요해진 것이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에서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수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이제 화장실도 못 가게 하면 어떡해요."
김동현도 한숨을 쉬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우리 회사도 얼마 전까지 그랬는데······."
"근데 노조가 생기고 나서 다 없어졌대."
부러운 마음에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오후 업무 시간,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김동현 씨! 이리 와봐!"
박 과장의 고함에 모두가 놀랐다.
"네······."
"자리 비움, 현황판에는 '회의 중'인데, CCTV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찍혔네요?"
순간 사무실이 얼어붙었다.
"아······. 그게······."
"이제 거짓말까지 하는 거야?"
결국 김동현은 경위서를 써야 했다.
[직원의 자리 비움 현황판 허위 기재에 관한 건]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새로운 공지가 떴다.
[내일부터 시행되는 추가 규칙]
자리 비움 시 감시자 지정 필수
자리 비움 주간 리포트 작성
월간 비움 시간 통계 분석
...
민준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완전한 감시 체제 아래에서 살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새로운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자리 비움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김 부장의 발표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컴퓨터에 설치된 프로그램이 자리 비움 관련 시간을 자동으로 체크하고, 보고서까지 작성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의 변명은 없겠지?"
이렇게 모든 직원은 완벽한 감시 시스템 아래 놓이게 됐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 커피를 마시는 시간, 심지어 복사하러 가는 시간까지······.
모든 것이 기록되고, 분석되고, 평가되는 세상.
이것이 바로 '꼰대 왕국'의 민낯이었다.
"띠링-“
[자리 비움 경고]
현재 4분 30초 경과
허용 시간 30초 남음
즉시 복귀 요망
...
민준은 한숨을 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모두에게 남은 일은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어 사는 것뿐.
"민준 씨, 견딜 만해요?"
송 대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견뎌야죠······. 다른 방법이 있나요?"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통제가 결코 업무 효율을 높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히려 누구나 할 것 없이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현황판을 관리하고, 사유서를 쓰고, 시간을 체크하느라······.
반면에 업무에 집중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게 정말 회사가 원하는 모습일까?'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시계를 보며
초를 세며
현황판을 체크하며······.
이 답답한 감시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
한 달 후,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화장실 이용 시간표를 만들었습니다."
김 부장이 새로운 표를 들고나왔다.
[화장실 이용 시간표]
09:00-09:05 김동현
09:10-09:15 이수진
09:20-09:25 강민준
...
"이제부터는 정해진 시간에만 화장실 이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부장님······."
송 대리가 조심스레 반론을 제기했다.
"뭐? 뭐가 문제인데?"
"사람마다 생리현상이 각자 다르고······."
"그건 핑계지! 직장인이면 자기 관리는 기본 아닌가?"
이제는 생리현상까지도 시간표대로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점심시간 후, 이수진이 또다시 울면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수진 씨! 지금 당신 시간이 아닌데?"
박 과장의 고함이 들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광염이······."
"이제는 질병을 핑계로 삼겠다는 건가?"
그날 오후, 이수진은 병원 진단서를 준비해야 했다. 방광염이라는 질병 때문에 특별 화장실 이용 허가를 받기 위해서.
"이게 말이 되나······."
옆에 있던 태호가 한숨을 쉬었다.
"맞아요.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김동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한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더욱 강화된 감시 시스템이 도입됐다.
"자리 비움 시 동선 추적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김 부장의 발표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무실 곳곳에 설치된 센서가 직원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누가 어디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지 다 알 수 있어요."
마치 감옥의 죄수처럼 직원들의 모든 동선이 감시되기 시작했다.
"강민준 씨, 복사실에서 3분 초과했네요?"
"이수진 씨, 왜 탕비실에 두 번이나 들렸죠?"
끊임없는 질책이 이어졌다.
이렇게 모든 사람의 하루는 완벽히 통제된 시간표 속에 갇혔다.
[일일 행동 시간표]
08:30-09:00 조회
09:00-10:00 집중 근무 시간 (자리 비움 절대 금지)
10:00-10:05 지정 휴식
10:05-12:00 업무 시간
12:00-13:00 점심시간
13:00-15:00 집중 근무 시간
15:00-15:05 지정 휴식
...
"이제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겠죠?"
김 부장의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업무 효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었다.
"저기······. 부장님."
어느 날 송 대리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뭡니까?"
"요즘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스트레스요? 규칙적인 생활이 뭐가 스트레스입니까?"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직원들의 고통은 그들에게 단순히 '불평'으로만 들리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사고가 터졌다.
"김동현 씨가 화장실에서 쓰러졌대요!"
이수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알고 보니 김동현은 화장실을 참다가 방광염이 심해져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이었다.
하지만 김 부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자기 관리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직원이 무슨 큰 일을·······."
그날 저녁, 신입 직원들은 몰래 회사 근처의 술집에 모였다.
"이제는 정말로 한계가 온 것 같아요."
이수진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맞아요. 우리가 무슨 로봇도 아니고······."
태호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그날 처음으로 진지하게 '저항'을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다음 날, 새로운 시스템이 또 추가됐다.
"모두 건강 관리 앱을 설치하세요. 이제부터 여러분의 일일 걸음 수, 심박수 등의 시간을 체크하겠습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직원들의 생체 정보까지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모두 우리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세요!"
김 부장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직원이 병가를 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성 위염
불면증
공황장애
우울증
...
하지만 경영진의 대응은 달랐다.
"최근 병가가 너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병가 신청 시 반드시 3개 이상의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세요."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졌다.
직원들은 그렇게 완벽한 감시 체계 아래서, 자유도 건강도 잃어가고 있었다.
"띠링-“
[긴급 공지]
내일부터 새로운 감시 카메라 설치
안면 인식 시스템 도입
자리 비움 시 실시간 얼굴 확인
...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는 표정까지 감시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게 정말 회사인가? 아니면 교도소인가?'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직원들은 그저······.
시계를 보며
발걸음을 재며
표정을 관리하며······.
이 답답한 감시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