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아야 비로소 익숙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영어를 배우면서 이런 식으로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be used to + 명사/동명사 = ~에 익숙하다
used to + 동사원형 = ~하곤 했다
그런데 잠깐. use는 분명히 '사용하다'라는 뜻이다. 그게 수동태가 되면 왜 갑자기 '익숙하다'는 뜻이 되는 걸까. used to 동사원형은 또 어떻고. '사용했다 + to'가 어떻게 '~하곤 했다'가 되는 건지.
그냥 외우라고 하니까 외웠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꽤 이상한 표현들이다. 오늘은 이 의문을 끝까지 파고들어 보려 한다.
use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 계열이 아니다. 뿌리는 고대 라틴어 uti(우티)다.
uti는 단순히 '물건을 쓴다'는 게 아니었다. '반복적으로 활용하여 이익을 취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여기서 파생된 단어들을 보면 감이 온다. utility(유용성), utensil(도구), 그리고 usage. usage는 특히 흥미롭다. '사용'이면서 동시에 '관습'이라는 뜻을 갖는다. 라틴어적 사고에서 무언가를 반복해서 쓰는 것은 자연스럽게 관습이 되기 때문이다.
이 uti가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프랑스어를 타고 영어로 건너온다. 프랑스어 user(위제). 프랑스어에서 user는 '사용하다'이면서 '닳게 하다', '소비하다'라는 뜻도 함께 가진다. 무언가를 계속 쓰면 닳는다. 그 감각이 이 단어 안에 살아 있다.
새 가죽 구두를 생각해보자. 처음엔 딱딱해서 발이 아프다. 그런데 매일 신다 보면 어느 순간 가죽이 내 발 모양대로 늘어나 있다. 이 구두는 내 발에 의해 used, 즉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닳은 상태다. 그리고 동시에 내 발에 딱 맞게 길들여진 상태이기도 하다.
be used to의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반복적인 경험에 의해 사용되고 닳다 보니, 어느새 그 상태에 맞게 내 모양이 잡혔다. 수동태(be used)를 쓰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내가 능동적으로 익숙해지려 한 게 아니라, 시간과 반복이 나를 그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익숙함이란 노력이 아니라 축적이 만들어낸다. 언어가 그 진실을 정직하게 담고 있다.
I used to live in Seoul. (나는 서울에 살곤 했다.)
여기서 used는 수동태가 아니다. use의 과거형이지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옛 의미의 use다. 라틴어 usage에서 왔던 그 의미, '어떤 일을 습관적으로 행하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이렇다. '나는 서울에 사는 것을 나의 관습으로 삼았다.' 현대 영어에서 이 의미의 use는 현재형으로 살아남지 못했다. 오직 과거형으로만,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는 뉘앙스를 담은 표현으로 화석처럼 남았다.
두 표현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왔다. use라는 단어 안에 원래부터 반복과 관습의 씨앗이 있었고, 그게 두 갈래로 나뉘어 살아남은 것이다.
이 25화 글을 끝으로 '영어공부 하다가 인생을 알아버렸어'브런치북의 연재를 마치고자한다.
listen to의 to가 왜 붙는지 궁금해하던 1화부터 여기까지 함께 와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이어서 새로이 연재할 '대학교 밖 영국학과' 에서 다시 만나길 고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