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귀엽습니다
저는 소아치과에서 일하는 치과위생사입니다.
그래서 매일 아이들과 함께 일 하고 있습니다.
소아치과를 선택하게 될 줄은 이력서를 넣기 일주일 전 까지도 몰랐지만
‘그래, 일하다 만나는 인간이란 원래 짜증 나는 거니까 어차피 짜증 날 거 귀여운 쪽으로 가보자’
학교 다니면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긴 나만의 노하우로 그렇게 소아치과에 들어왔습니다.
첫 직장에 대한 첫인상은 상당히 호러스러웠는데
벽 너머로 들려오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울음 섞인
비명은 치료가 아닌 퇴마과정을 보는 듯했습니다.
요즘도 하루에 한 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퇴마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귀여우니까 괜찮아요.
그냥 단지 모든 아이들이 치과를 조금 아주 조금만 무서워하는 그런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치과는 이가 썩어야만 오는 곳이 아니니까요. 이가 썩기 전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원래 직장이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일이니까, 일은 힘드니까 있는 힘껏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 자체가 주는 피곤함을 빼면 진료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은 저에게 오늘을 내일을 내년을 살아갈 수있는 따뜻한 마음을 얻고는 합니다.
아직 한글을 못 읽으니 책 읽어 달라는 어린이,
축구하러 가느냐고 물으니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는 어린이축구팀 유니폼 입은 어린이,
캐치티니핑이 너무 좋아서 치료할 때 티니핑 생각을 한다는 어린이,
치료할 때 천장에 달린 TV에서 엄마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어린이 등등
가끔 쉬는 날도 어린이 친구들이 생각나서 눈가가 시리기도 합니다.
어제는 진료실에서 무슨 얘기를 듣고 왔는지 데스크에 있던 나에게 다가와서 “저 이제 밥 골고루 먹을 거예요”라고 시무룩하게 얘기한 어린이.
밥 골고루 먹으라는 얘기를 얼마 만에 듣는 건지 반가운 마음에 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정말? 너무 최고다! 그럼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데? “
“소시지요”
“선생님도 소시지 좋아하는데 케첩 찍어먹는 거 좋아하니?”
“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보통 대화와는 조금 다른, 직장에서의 어린이들과의 스몰토크는 어쩔 수 없는 소아치과의 매력인가 봅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간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들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저는 모든 인간이 의뭉스럽고, 괜히 나를 해코지할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누군가도 소시지에 케첩 찍어 먹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귀엽게만 느껴집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었다’ 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아가지만
살다가 누군가 너무너무 미울 때는 저 새끼도 한 때는 동화책을 보고 싶지만 아직 한글을 못 읽는, 소시지를 좋아하는 어린이었다는 생각을 해보면 조금씩 세상이 귀여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른이 될 어린이들과 어린이었던 어른들이 서로를 귀여워해주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귀여워서 목이 따갑네요.
글을 읽는 모두 남은 오늘 사랑스러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제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