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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kwanEJ Feb 04. 2022

설날에 돌아보는 지난 2021년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작년은 좋은 해였다. 단, 스크린 속 세상에서만.

이 글은 2022년 2월 1일, 뉴저지 일간지 The Star-Ledger / NJ.com에 기고한 글에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하여 게재되었습니다. 기고문 원문은 이곳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월 3일 뉴욕 한국일보에서 이 기고문을 보도하며 제게 코멘트를 부탁했는데, 허락된 지면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기고문을 바탕으로 여기에 옮깁니다. 기고문을 발행한 매체의 방침에 따라 기고문과 관련된 글은 약속된 시간이 흐른 뒤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밖에 나가지를 못하겠어. 요새 미국 사람들이 한국인 싫어한대매? 너무 무서워."


지난 2017년 겨울, 우리 사무실로 전화를 주신 뉴저지 우리 동네에 한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뉴저지에서만 활동할 때는 가끔씩 본인이 누구신지 밝히지도 않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명확히 문의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전화 주시는 분들이 간혹 계셨습니다. 이 분께서도 제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셨고, 본인이 미국에 이민 온 지 40년이 돼가는데도 영어를 잘 못해서 항상 걱정이고 최근에 동네 언론에서 저를 보셨다고 연락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동네 특목고에서 인종 차별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져, 해당 학군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를 엄벌을 요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함께 세우던 시기였습니다.  새 학년도 (미국의 학년도는 9월에 시작합니다) 첫날 특정 교사가 수업을 시작하며 특정 문화권을 몇 가지 언급하며 본인의 배경이 그에 해당하면 손을 들라고 시킨 뒤, 각 문화권에 대한 교사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었는데 하필이면 한국 문화에 대해서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특정하게 "나는 한국사람들이 싫어 (I hate Koreans)"라고 발언한 것입니다. 이 학교에는 전교생의 반이상이 아시아계로 이루어져 있고, 그 대다수는 한국계 학생인데도 수년간 이런 일이 이어지며 일절의 사과도 아무런 설명도 없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당시에 많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추가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만, 이번 설에 기고문을 작성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힘을 합치고자 했지만, 그 이후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보다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일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가 라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대중 미디어에 비친 아시아계의 모습 (가시성 visibility)에는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K-pop 그룹인 BTS가 무려 American Music Awards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하고,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과 함께 Golden Globe의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또 미국의 <뽀뽀뽀>와도 같은 <세서미 스트릿 Sesame Street>에는 한인 캐릭터가 데뷔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인형 제조사 American Girl에서는 최초의 아시아계 인형을, 또 마블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 수퍼히어로가 주연인 최초의 풀렝스 (full length) 영화를 내놓았고, 디즈니에서는 최초의 남아시아계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문화권)의 주연 캐릭터 그리고 동남아시아계 주연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또 디즈니에서 작년에 내놓은 작품 중 아시아계 미국인 소녀가 줄거리의 중심이 되는 <Turning Red>는 감독 또한 소수계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주황색 티셔츠에 회색 조끼를 입은 Sesame Street의 캐릭터 지영 (Ji-Young)과 최초의 아시아계 수퍼히어로를 연기한 배우 시무 리우 (Simu Liu)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맞닥뜨리는 실상은 이렇게 화려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급증한 아시아계 대상 인종주의적 증오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컨소시엄 Stop AAPI Hate의 데이터 트래커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제보된 증오 관련 사건은 최소 10,370건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폭력은 언어폭력 (verbal harrassment; 또는 혐오 표현), 재물 손괴와 사유재산 훼손 (vandalism), 물리적 폭행, 차별 등 다양한 형태로 자행됩니다. 이러한 공격이 급증했다는 추세는 비단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기분이 아니라, 미 연방수사국 FBI에 신고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 사건의 수, 뉴욕시경 NYPD 발표 아시아계 대상 사건 관련 자료, 그리고 뉴저지주 검찰총장 (Attorney General of New Jersey) 발표 편견 사건 (bias incident) 보고서 또한 뒷받침합니다.  


아시안 식당과 아시아계 가족이 사는 집에 인종주의적인 혐오 표현을 그래피티로 적는가 하면, 가게에 일하고 있는 아시아계 직원에게 이유 없이 공격을 가하고, 길을 걷고 있는 89세 여성에 괜히 방화를 저지르고,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노인을 살해하기도 합니다. 또 얼마 전 뉴욕에서는 아시아계 여성이 지하철 선로에 밀려 사망하는 등 인종주의적 증오와 그에 기인한 폭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은 정말 수도 없이 나열할 수 있는데, 새로운 예시를 떠오를 때마다 트라우마가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막막함과 아픔은 저만 느끼는 게 아닐 겁니다.


이런 사건들을 흔히 "증오 범죄" (hate crime)이라고 부르는데요, 사실 법리적인 기준에 비춰 봤을 때 증오 범죄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증오 범죄"라는 표현 사용을 지양해야

저는 "증오 범죄"라는 표현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위에 말씀드린 이유로, 이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범죄"로 취급되는 사건만을 다루게 되는 분위기가 고착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인종주의적 폭력" (racial violence / racially charged violence)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종주의에 기반한 폭력은 결과를 중점에 두고, 증오 범죄는 의도에 그 기준이 맞춰지는데, 이 의도가 증명되야만 증오 범죄가 성립합니다.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비교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UCLA 아시아계 미국학과 캐런 우메모토 교수님 (Professor Karen Umemoto)의 설명을 참고하시기 추천합니다.


이런 법리적 내지는 기술적인 이유 외에도 제가 이 표현을 지양하는 이유는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과하게 무게가 실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의자 검거 그리고 가해자 엄벌은 사실 애석하게도 심리적인 만족을 위한 보복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정말 "정의 구현"이 목적이라면, 그를 넘어 유사한 사건의 재발방지와 피해자 보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종주의적 반감과 편견 그리고 그에 기반한 폭력이 급증한 지 2년이 된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떤 예방 대책을 논의했나요? 아시아계 연방 의원들이 주도하고 다양성과 표용성을 중시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신속히 제정한 <코로나19 증오 범죄 법 (COVID-19 Hate Crimes Act)> 이후 연방 정부는 어떤 진전을 보여줬나요? 이는 법안의 의회 내 논의 과정에서도 우리가 제기한 우려였습니다.


혐오와 편견, 배척과 차별 사이 공통점

위에 열거한 사건들이 증오 범죄 사건이 아니지만, 그 사이에는 분명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이런 공격은 힘이 없는 소수자 (minority) 또는 환영하기 싫은 외부인으로 비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집니다. 그들의 실제 국적이나 문화적 배경, 영어 구사 능력, 소득 수준, 학력, 또는 사회적 지위는 이에 전혀 무관합니다. 이런 인종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그저 다 같은 사람들, 하나의 무리일 뿐이고 분노의 표출에 있어 희생양일 뿐입니다.


또, 이런 공격은 아시아계를 대상으로만 벌어지지 않고 대체로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앞서 소개드린 Bergen County Academies에서 학기 초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나는 한국인들이 싫어 (I hate Koreans)"라고 발언하고, 우리 동네 Cliffside Park High School에서는 스페인어를 쓰는 학생들에게 한 선생님이 "미국 말로 얘기해 (Speak American)"이라고 일갈을 한 일, 또 제가 졸업한 Ridgefield Memorial High School에서는 최근 과제 제출 마감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요청한 무슬림 학생에게 "우리는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지 않아 (We don't negotiate with terrorists)"라고 선생님이 대답을 한 일 등이 그 단적인 예가 됩니다. 2017년 당시 제가 쓴 성명서를 통해서도 짚었듯이, 사회적인 힘에 불균형이 존재하는 관계 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는 선생님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그 어떤 변명을 해도 약자인 학생에게는 언어적이고 정서적인 학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편견과 배척하고자 하는 혐오는 앞서 말씀드렸듯 그 대상의 사회적 지위 따위와 무관하기에, 미국 최초의 시크 (Sikh) 교도 출신 시장 중 한 명인 뉴저지 호보큰의 라비 발라 (Ravi Bhalla) 시장을 대상으로도 "테러리즘"이라는 단어와 관련지어 낙선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 한인 최초로 연방 의회에서 뉴저지를 대표하는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 (Representative Andy Kim) 또한 "우리가 아니다 (not one us)"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정치공세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앤디 김 연방 하원의원의 첫 선거 당시 그를 공격하는 메시지를 담은 네거티브 광고 우편물. 익명으로 발송되어 뉴저지 주 정치 광고 법을 위반했다.


이 기고문을 쓴 이유

최근 우리 동네 뉴저지에는 고무적인 일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주의회에 아시아계 의원의 숫자가 무려 6명으로 늘어났고, 작년 말에는 주정부에 아시아-태평양계 자문위원회가 신설되는 데에 이어 최근에는 공교육 과정에 아시아-태평양계의 역사의 포함을 의무화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뉴저지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이런 공교육 과정을 채택한 주가 되었습니다. 뉴저지의 인구와 더불어 유권자격자의 10% 이상이 아시아계라는 사실도 한 몫했겠지만, 이러한 성과는 수년째 풀뿌리 단계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활동가들에 노력 덕분입니다.


이런 성과는 하지만 권익 옹호와 신장 노력에 있어 진일보하는 과정이자 발전의 수단이지, 결코 궁극적 목표가 아닙니다. 상징적인 승리는 실질적인 변화를 향한 첫걸음일 뿐이기에, 새해에는 이런 희망적인 일들이 정말 실상에 도움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고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위에 언급한 고등학교 내 사건 중 2017년 BCA에서의 일과 2021년 RMHS에서의 일에 대해 각 학군이 취한 태도는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2017년에는 25개가 넘는 단체를 모아 전방위로 압박을 가한 뒤에야 수개월에 걸쳐 사과 아닌 사과를 받아냈지만, 2021년에는 해당 사건이 알려진 뒤 이틀 만에 학군 측에서 바로 유감을 표명했고 그 뒤 2주 내로 인사조치를 취했습니다. 물론 한 사건에서는 대상이 특정 개인이 아닌 집단이었고, 문화적으로 그 백래시 (backlash)가 이슬람 또는 아랍계에 비해 덜하다고 느낄 수 있는 동아시아계였다는 점 또한 그 요인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보다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여러 인종과 문화권간에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연대가 중요하다는 입장에 동의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이 생겼을 때는 모른척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한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이 되는 것 마냥말입니다.


반면 비-한인 그리고 비-아시안들에게는 이 논리가 정반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BTS의 인기, 오징어 게임 등 한국어로 된 드라마와 영화의 유행 등 정말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규모로 급증한 열풍은 주변에 한국계/한국인이 없어 기존엔 관심은커녕 아예 인지조차 없었던 사람들에게 까지 불어왔습니다. 하지만 스크린 너머 가상공간이 아니라 본인의 일상에 존재하는 이웃주민에게는 그런 관심이나 호의는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1일, 미주리주의 한인 TV 앵커는 Michelle Li는 새해 첫날 방송 진행 중 본인은 많은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만둣국을 먹어서 새해를 기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시청자 중 한 명이 "굉장히 아시아스럽다 (very Asian)"이라며 "본인의 한국적인 면은 사적으로만 하길 (keep her Korean to herself)"바란다며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많은 한국인 그리고 한인들이 공분하고 마음 아파할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한 번씩은 겪어본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며칠 전에는 BTS의 멤버 정국이 멕시칸 음식 체인점인 치폿레 (Chipotle)를 '치콧레 (chicotle)'로 잘못 발음해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인터넷을 부술 (break the internet)'정도로 유행이 되었는데, 이 모습을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치폿레 또한 트위터 계정의 이름을 일시적으로 '치콧레'로 바꾸며 정국이 이야기했기에 앞으로 브랜드의 이름 또한 이렇게 바뀔 것이라는 재치 있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한인 또는 아시안, 아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미국 시민이 같은 실수를 했으면 주변 반응이 이렇게 호의적이었을까요? 세계적인 수퍼스타와 인기도 미모도 비교할 수 없는 제가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상공간의 아시안은 멋있고 트렌디한 존재로 인식되고 현실 세계에서 공존하는 우리는 증오와 배척의 대상이라는 간극에 씁쓸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더 많은 한인 정치인 배출?

한인 사회의 권익 신장을 위해 저는 정치력 신장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주 한인 유권자연대 (KAGC)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정치력 신장"이라는 개념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한인 후보를 더 많이 발굴하고 선출직에 당선시키는 것이 결코 우리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이 아닙니다. 비단 한인 사회뿐 아니라 대다수의 소수계 커뮤니티에게도 적용될 것 같습니다만, 우리의 현안과 고충을 잘 이해하고 문제 해결 그리고 삶의 질 향상에 진심으로 결과를 이끌어 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쟁점입니다. 아무리 한인 선출직 정책 수립자 또는 결정권자라고 한들 이런 자세가 결여되고 해당 커뮤니티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으면 그저 상징적인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진정한 정치력 신장이란 각자가 스스로의 현안에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과 스스로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될 때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소수의 개인들이 더 유명해진다거나 힘 있는 자리에 들어선다고 그들의 커뮤니티에 이익이 연결되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언어장벽을 무너뜨리고 편견을 해소하는 것 또한 그 출발점이자 발전의 수단이 됩니다. 


즉, 일상적으로 참여하고 정치라는 수단을 대중적으로 사용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의 속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곧 실망을 느끼고 등을 돌리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와 발전은 우리 한 명 한 명 모두의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절대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기에, 우리 모두 지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W]e will go a long way from spectator democ­racy to real democracy when we understand that the future of this coun­try doesn’t depend, mainly, on who is our next president. It depends on whether the American citizen...will organize all over the country...and shake this country out of old paths into new ones. -excerpt from "Beyond Voting" in the Zinn Reader

이 나라의 미래가 다음 대통령이 누군가에 따라 대부분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때, 우리는 '구경꾼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큰 발걸음을 디딜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 시민들이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이 나라를 흔들어 구태로부터 새로운 길로 발 딛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는 일입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저서 the Zinn Reader 중 에세이 "투표 너머에 (Beyond Voting)"에서 발췌




I wrote for The Star-Ledger today to reflect on the continued racial violence against our community and call for tangible change—which only comes at the repeated effort of each and every one of us, not by the  social advancement of a select few or by cultural breakthroughs in symbols.


Despite an incredible increase in our visibility in the media, aggressions based on bigotry persist. So I hope the recent positive changes in the NJ government lead to tangible outcomes and wish for patience and endurance, for we all overestimate the rate of change and underestimate the impact of it.


In solidarity with the #VeryAsian movement and all those harmed by bigotry and racism.


새해 복 많이 받으세호 �

추신: 저 BTS를 잘 알지는 못해도 좋아합니다. 배경 사진 어그로는 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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