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선포에 대해 돌아보며
저는 4월이 되면 부끄럽습니다. 평소에도 지은 죄가 많지만, 특히 몇 년 전 4월에 있었던 뼈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날은 주일 미사를 마치고 우리 청년 교우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부활 대축일을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랬는지 사람도 많았고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즐겼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가벼운 실수를 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어느새 “병신샷”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한두 번 썼던 말도 아니고, 술자리에서 어렵지 않게 나오는 구호였지만 그날따라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과 한두 시간 전, 우리는 미사를 함께 올리며 주님의 말씀에 “아멘”을 외치고 보편지향기도 뒤에는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손을 맞잡고 간청했습니다. 그날 보편지향기도 내용에는 특히 장애인을 위한 기도가 담겨있었습니다. (“희망의 주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을 돌보시어,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꿋꿋이 이겨 내고, 재활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소서.” 2023년 4월 16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또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위로하며 그들의 안식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함께 올린 날인데, “병신”이라는 말을 모두가 입에 올리는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누구를 비하하거나 조롱할 뜻이 아니었을지언정,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쓰는 이런 표현이 얼마나 많을까요. 주일미사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사제의 말씀과 파견성가로 매듭짓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하겠다며 세상으로 파견된 지 불과 한두 시간 만에 함께 올린 기도 내용을 잊었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얼마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굶주린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You pray for the hungry. Then you feed them. That’s how prayer works.”) 생전에 그는 여러 차례 “기도와 행동은 항상 깊이 일치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Prayer that doesn't lead to concrete action toward our brothers is a fruitless and incomplete prayer...prayer and action must always be profoundly united." 2013년 7월 21일 삼중기도)
복음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선포하는 것임을 우리 함께 마음에 되새기며 이번 부활 시기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 한 시간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이 아니라, 일 년 365일을 신앙인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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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2장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라고 전하고, 에페소서에서는 우리 모두가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고 전합니다. 지금 서울 혜화동성당의 종탑에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올라가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형제로서, 이웃으로서, 또 동료시민으로서 그들의 투쟁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몸의 한곳이 아프면 온몸에 그 고통이 전해지고, 우리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건강해지는 것이 우리 몸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듯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모든 신자가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각자의 선은 모두에게 전달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47항)라는 것입니다.
- 2025년 1월 12일(다해) 주님 세례 축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