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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 성당의 첨탑, 누가 본다고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

by SungkwanEJ

포코노 평화의 피정집에 처음 봉사하러 간 날에는 날씨가 참 변덕스러웠습니다. 도착했을 때에 이미 땅은 비에 젖어있었고, 하루 종일 우리를 약 올리는 듯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했습니다. 수녀님들께서 우리 본당 청년신자들에게 처음으로 맡기신 작업은 울타리 청소였습니다. 시원한 물줄기가 나오는 호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일일이 울타리를 닦는 일이 제게는 의아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보슬 빗속에서 닦아봐야 무슨 소용일까 하는 의구심에,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콩쥐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각자 구역을 나누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닦을지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면서 서로 나름의 요령을 나눴습니다. 조금씩 힘이 들어 말 수가 줄어들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머리를 많이 쓰지 말고 묵묵히 반복 작업을 하면서 기도하라는 뜻인가?"


넓은 부지에 울타리는 꽤나 길었고, 구석구석 이끼가 끼어있어 꼼꼼히 닦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차피 비 맞아서 또 더러워질 텐데, 대강하고 안에 들어가서 앉아볼까 하는 비겁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때쯤 문득 예전에 본 예능 프로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가수 이상순이 나무 의자를 만들면서, 의자 밑바닥을 열심히 사포질을 하자 그의 아내 이효리가 "여긴 사람들이 안보잖아. 누가 알겠어?"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이상순은 "내가 알잖아"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는 또 "남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라고 소셜미디어에 적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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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자신에게도 떳떳하지 못하다면, 하느님 앞에서도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보다 나를 속속들이 또 환히 다 아시는 분이신데, (시편 139장) 내가 한순간 못 본 척 고개를 돌린 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말없이 울타리를 비누칠하면서도, 저 혼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날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일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 얻은 배움 중 가장 큰 깨우침이었습니다. 세상에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치부할 것 하나 없고, 모든 순간에 가르침이 담겨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 있는 쾰른 대성당은 고딕스타일과 그 웅장한 규모로 유명합니다. 1248년에 짓기 시작해서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은 그로부터 3년 뒤에 완성되었습니다) 1880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완공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기록되었습니다. 157미터가 넘는다는 그 첨탑의 끝에는 장미꽃이 섬세히 새겨져 있는데, 그 높이 때문에 땅에 있는 사람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첨탑 끝뿐만 아니라 성당의 구석구석 모든 부분에 장인이 공을 들여 돌을 깎아 새겨두었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은 보지 못해도 하느님은 보고 계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도 이런 마음을 평소에도 지킬 수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일에도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담아 끝맺을 수 있을까요. 누구한테 확인받지 않아도, 제 신념과 가치에 따라 그분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 한 번 기도를 올립니다.


부족한 도구로 일하시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나의 나약함 아시는
주님께서 날 부르시네

열일곱이다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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