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에,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5월 1일은 노동절인 동시에, 요셉 성인의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자, 예수님의 양아버지로 목수였던 그는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노동자 성 요셉의 축일 (Feast of Saint Joseph the worker)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베네딕트 성인의 말씀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고, 삶의 모든 순간에 수도자처럼 기도와 노동에만 온전히 몰두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부활의 로랑 형제 니콜라 에르망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일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평범한 일을 하느님을 위해 하는 데 있다. 하느님은 일의 위대함을 보지 않고 그 일을 깊은 사랑으로 하는가를 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현존 연습> 중에서) 일상의 삶에서 성덕을 쌓는 일을 중요시한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는 "사소하게 보일 지더라도 사랑으로 행한 일은 모두 중요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Anything done out of love is important however small it might appear.")
사실 이런 비슷한 교훈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격언 "내가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면, 작은 일을 대단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라거나 ("If I cannot do great things, I can do small things in a great way."), 리지외의 데레사 (Thérèse de Lisieux; 소화 데레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의 "작은 길" (the Little Way)처럼 크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일을 온 맘 다해하는 자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일상의 무게 때문인지 이런 위로의 말을 기억하며 하루를 지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거룩함"이라는 말은 저와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저 스스로보다 제 친구들이나 가족은 더욱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로버트 엘스버그는 대신에 요지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사는 온전하고, 조화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The object is to be a whole, integrated and happy person in the best sense of someone whose life is aligned with the deepest purpose for their existence.) 책 <우리 중 복 받은 사람들 (Blessed Among Us)>을 펴낸 그는 성인이란 완벽하거나 이미 거룩함에 도달한 사람이 아닌,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어린 시절 성공회 미사에서 들었던 성가의 가사를 소개합니다.
"당신은 그들을 학교나 골목길이나 바다에서, 교회에서도 기차에서도, 가게에서 그리고 차를 마시는 시간에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인들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You can meet them in school, or in lanes, or at sea, in church, or in trains, or in shops, or at tea; for the saints of God are just folk like me, and I mean to be one too.)
- 성가 <I Sing a Song of the Saints of God> 중
최근에 마친 성서 모임에서 이번 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냐는 묵상 질문을 접했습니다. 모임 초반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닌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지만, 마르코 공부를 마치면서는 지체 없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불과 4개월 사이의 변화는 극적인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접하는 게 어떤 형상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 사랑의 손길이 닿아있는 내 일상의 모든 것들을 보고 감사하는 것이라고 제 관점이 바뀐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일까요. 바뀌는 계절 따라 은은히 느껴지는 꽃향기부터 제가 먹고 난 그릇을 말없이 설거지해 두시는 엄마의 마음까지 무엇 하나 예수님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면 노동자가 아닌 사람 또한 없습니다. 가사도, 돌봄 노동도, 돈을 버는 일도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고된지 알 수 없습니다. 엄마의 집안일을 덜고, 성인이고 예수님의 사랑인 주변 모두에게 감사하는 일이야 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거룩한 일의 시작이겠습니다.
지난 2020년 노동절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동은 인간의 첫 번째 소명이며, 존엄함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를 하느님과 닮게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존엄함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터로 내몰리는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강제 노동, 불공정, 임금체불" 등에 고통받는 이들은 지구 반대편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고 꼬집습니다. 이런 우리 이웃들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 움직임이 바로 오늘 노동절 (근로자의 날) 제정의 배경에 있습니다.
교황께서 짚으셨 듯,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노예와도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배달 부업 중 싱크홀에 빠져, 제빵공장에서 기계에 끼어, 지하철역에서 스크린도어 설치 중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서, 일하는 도중 스토커에게 피습을 당해서, 제철소에서 쇳물에 빠져, 평택항 부두에서, 화력발전소에서 일을 하다 삶을 마감한 사람들은 수없이 늘어갑니다. 이들의 삶 또한 거룩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죽음의 외주화"로 지탱되는 불공정한 경제 구조에서 무고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 아니라, 땀 흘려 일했기에, 또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일에는 정성을 다하고, 이웃과 형제가 겪는 어려움에는 도움이 되는 것이야 말로 그분께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이야 말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겠습니다. 오늘 요셉 성인의 기념일을 맞아 제 삶의 자세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