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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계절

끝과 새로운 시작 사이 과도기에

by SungkwanEJ

미국에서는 이제 한 학년도가 끝나는 시기입니다. 대학교는 대개 5월 중, 고등학교는 6월 중 졸업식을 치르게 됩니다.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또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유학생이나 교환학생 신분, 또는 단기 인턴으로 미국에 온 청년들이 많은 우리 동네에서는 특히 싱숭생숭한 분위기가 도드라집니다. 학교를 옮기거나 취직하게 되어 이사 가는 사람도 있고, 비자가 만료되어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축하하는 마음과 아쉬워하는 마음이 뒤섞여 시원섭섭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기약 없는 이별 인사를 건네온 이들은 아예 정 붙이는 걸 꺼리기도 합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큰 환경의 변화를 비롯해 우리는 참 많은 변화를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가톨릭교회는 교황 공석 (Sede Vacante) 상태이며, 모국인 한국에는 대통령의 자리가 비어있습니다. 개개인의 삶에서 친구와 가족 등 인간관계는 유동적이고, 아무리 계획을 꼼꼼히 세운다 해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안정은 어쩌면 변화의 부재가 아니라 그 소용돌이 안에서도 잔잔한 마음을 일컫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변화는 특히 청년들에게 그 무게가 더 클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 해도 익숙해지겠냐만은) 대부분이 처음 겪는 일이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게다가 많은 경우 어떤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할지도 막막하게 느낍니다. 청춘은 "보이지 않는 꿈을 찾아 불안한 물장구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유튜버 겸 작가 문상훈의 표현에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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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의 삶 대부분은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제임스 마틴 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 "성토요일에 제자들이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기다림 속에 머뭅니다." ("Most of our days are, in fact, times of waiting, as the disciples waited during Holy Saturday." Fr. James Martin, S.J.) 예수님의 죽음 뒤, 두려움에 숨어있던 신자들의 모습과 오늘날 우리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동료에게 또 하느님께 얼마큼을 기댈 수 있을지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틴 신부님은 2017년 성토요일 에세이를 통해 기다림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미래에 비관적인 절망의 기다림 (waiting in despair)이 있는가 하면,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기는 듯한 수동적인 기다림 (wait of passivity) 또한 있습니다. 이를테면 "될 대로 돼라"하는 마음이겠지요.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희망이라고 불리는 크리스천 방식의 기다림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We are called to the wait of the Christian, which is called hope.) 앞의 두 가지 유형과 희망이 다른 점은 능동적인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음에 기반한 희망을 뜻하지만, 동시에 저는 준비하는 자세를 의미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꼼꼼히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설렘이 불안을 앞선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매년 5월은 성모 성월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다양한 이름 중에는 망망대해에서 길잡이가 되는 바다의 별 (Stella Maris; Star of the Sea),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의 매듭을 푸시는 분 (Untier of Knots, or Undoer of Knots)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또, 길의 인도자이신 성모님 (Madonna della Strada; Our Lady of the Way)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큰 변화를 마주하는 과도기에 도움의 기도를 청할 분께 걸맞은 이름입니다.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라는 말이 총 365번 나온다고 합니다. 일 년 내내 매일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침 희년으로 선포된 올해 2025년의 키워드는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기다림의 시간을, 즉 이 땅에서 허락된 삶 동안 희망으로 내일을 맞이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이런 변화의 시간에 우리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남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비판적이되 냉소적으로 세상을 대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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