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도를 어떻게, 또 왜 하는가
얼마 전 평일 미사 뒤에 우연히 식사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자매님께서 제게 식사 전 기도를 부탁하시어 성호경을 그었고 “주님, 은혜로이”라는 첫마디를 뱉었는데, 그 뒤로 제 입이 얼었습니다. 기도문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크게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앞에는 수녀님께서도 자리하셨는데 말입니다. 다들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시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지만, 저는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술에 취한 뒤에도 잊지 않고 하는 기도인데 그 순간 머리가 하얘진 것이 의아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며칠째 고민해 봤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막상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소리 내어 기도한 적이 드물었습니다. 특히, 우리 청년부 교우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는 저 또한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지 어물쩍 그리고 빠르게 기도하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습니다. 마치 거추장스러운 일을 치워내듯이 말입니다.
조금 더 고민해 보니, 이것은 비단 식사 전 기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묵주 기도를 바칠 때도,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도 저는 기계적으로 기도문을 외우고만 있었습니다. 어떤 기도를 드려도 열과 성으로 준비하고, 한마디 한마디에 온 마음을 실었던 예전 모습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보는 게 아니라 한들,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차에 우리 본당에 방문하신 한 신부님의 강론을 접했습니다. 우리는 잃은 것이 많을 때 기도를 절실히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곱씹어보니 제가 지금은 마음도 상황도 편해져서 해이해진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또한 감사할 일이지만, 필요할 때만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복사 봉사를 준비하면서 접했던 기도문이 떠오릅니다. “주님, 이 거룩한 미사를 제 사제직의 첫 미사처럼, 생의 마지막 미사처럼, 이 세상의 유일한 미사처럼 거행하게 하소서!” 제가 비록 사제는 아니지만, 모든 미사를, 기도를, 그리고 제게 허락된 하루하루를 온 맘 다해 봉헌해야겠습니다. 저의 잘못을 돌아보고 또 마음을 다시 잡을 예기치 않은 기회가 지금 돌아보니 너무나도 큰 선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뜯어보며 의미를 찾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저는 마음을 다잡아 다시금 그분과 사랑에 빠져야 하겠습니다. 그분의 따스한 손길과 아름다움을 제 세상 모든 곳에서 느껴지도록 말입니다.
이 글은 2025년 11월 2일자 미주가톨릭평화신문에 실렸습니다. 사진 속 장소는 연방의사당 내 기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