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며 겪는 시간 결핍과 우선순위 재정립
전례력으로도 세속적인 달력으로도 어느덧 연말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서머타임이 끝난 뒤 매일 해 또한 더 이른 시간에 지고 있습니다. 짧아진 하루를 마주하며 이 시기에 들었던 여러 신부님의 강론이 떠오릅니다. 특히, CAN 한국지부 지부장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님께서는 이를 “시간의 가난함을 알게 하는” 때라고 표현하신 바 있습니다. 작년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에 그는 “11월은 이미 흘러가 버린 일에 대하여 후회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음을 알게 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에 남은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게 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의 하루는 가사나 돌봄 같은 무급 노동, 그리고 불편하고 먼 길을 돌아가는 이동 수단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넉넉한 사람의 하루보다 쓸 수 있는 시간도 선택의 여지도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를 사회학적으로는 시간 결핍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내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면, 평소에는 간과했던 것들을 진지하게 짚어보게 됩니다. 지각이 걱정되는 출근길에도, 꼭 정시 퇴근을 해야 하는 날에도 무엇이 중요한지 평소보다 과감히 선택하게 됩니다. 마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때, 작은 지출마저 여러 번 고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푼 한 푼의 의미가, 1분 1초의 의미가 크게 다가옵니다. 순간의 의미를 들여다보다 보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더 큰 시간의 선물도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남은 한 해와 제 삶 전체에서 무엇을 우선에 두어야 할지 묻게 됩니다. 내 삶에 남은 시간이 단 수개월이라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이렇게 겨울이 가까워져 오면 꼭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떠오르곤 합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라는 가사는 저를 반성케 합니다. 저만을 생각하느라 주변을 챙기지도 못하고, 하느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루카 복음 14장을 보면, 사람들은 밭과 소와 가정일에 마음을 두느라 주인의 잔치 초대를 잇달아 거절합니다. 저 역시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의 부르심을 미루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시간이 부족할수록 제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짚는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시간의 가난을 겪는 이때, 저 스스로보다 주님을 우선할 수 있게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앞서 주님을 택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합니다. 또, 우리의 감사함이 결핍이나 비교에서 비롯되지 않게 마음의 넉넉함을 청해봅니다.
이 글은 2025년 11월 29일 자 미주가톨릭평화신문에 실렸습니다.
p.s.: "사소한 것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금밖엔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죠." - 이해인 수녀님저 <민들레 솜털처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