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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아닌 Mar 30. 2023

새의 그늘

전혀 다른 것들이 종종 닮아있다

아마도 윗집 어딘가 비둘기가 살았다. 실외기의 위쪽 같았다. 종종 낯선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몸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아내는 그걸 싫어했다. 개의치 않던 나도 조금씩 불쾌해졌다. 새가 내는 소리지만 그게 새라기에는 조금 무거웠다. 아내는 비둘기의 배설물이 집에 들어오는 걸 염려했다. 새의 배설물은 윗집의 실외기에서 떨어지며 우리집 유리창에 튀었다. 유리에는 이미 얼룩이 많았다. 그걸 모르고 살았다니. 창이 있던 곳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두는 자리였다.


아기 옷을 빨 때는 어떡해. 아내는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늦은 저녁이었다. 밤이 되자 얼룩이 더 새카맣게 보였다. 환풍구에서 부스러기가 넘어오면 어쩌지. 아내는 아기의 생활을 생각하는 데 열중했다. 아이를 갖기로 약속한 달까지는 아직 날짜가 많았다. 이사를 가면 되지. 간편한 해결책이 있다고 여겼다.


그쯤이다. 걷다가도 비둘기의 울음을 들었다. 늘 길가에 따라다니는 새였을 텐데. 새삼 처음 듣는 소리처럼 귀에 걸려든 건 요 며칠이다. 이른 아침마다 창밖 어디서 비둘기 소리에 잠을 깼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직 어스름한 거실에서 화장실까지. 작고 또렷하게 비둘기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설물이 흘러내리던 유리창은 작은 방이었다. 울음소리는 집안에 사는 것 같았다. 내 귀를 따라다니듯이 들렸다.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으나 사실 크게 심란하지도 않았다. 위협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흔한 일일지 모른다. 종종 남의 집 창틀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본다. 나의 오래된 기억 중에는 할머니가 유리창을 두드리던 장면이 있다. 그분께서는 화단에 들어온 비둘기를 내쫓으려고 했다. 훠이 훠이. 비둘기가 죽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병든 것처럼 몸이 부풀어 있었다.


그곳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이 든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종종 집에 찾아갈 때면 할머니는 무척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찾아갈 때마다 조금씩 표정이 무뎌졌다. 점점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몸을 씻겼다. 아버지는 넘어진 할머니를 일으켰다. 할머니는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가족들이 할머니와 밥을 따로 먹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할머니는 침대에서 접시 채 식사를 했다. 결혼식에는 할머니가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전부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


저녁을 나누어 먹고 집에 가던 참에 할머니의 방문을 두드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곁에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할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말없이 방문을 닫던 차였다. 좁아진 문틈 새로 할머니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게 꼭 비둘기의 울음소리였다. 눈치챈 것은 엉뚱한 날이다. 출근하던 스산한 아침길. 어느 골목에서 들리는 울음이었다. 나는 창 한 켠에 가득한 동물의 배설물이 아닌 나의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심란할 때가 있다.


오래된 생각이다. 어째서 사람의 몸에서는 더러운 것들이 만들어질까. 지독한 락스냄새를 맡으며 닦은 타일 구석에는 어째서 며칠 사이에 붉은색 곰팡이가 피어나는 걸까. 음식은 서서히 썩어가고 식물은 보이지 않는 흙 속 어둠에서 죽어간다. 어째서 죽은 것들에게는 벌레가 생길까. 나는 작고 기어 다니는 것들이 두렵다.


아기옷을 빨 때는 따로 삶아야겠어. 아내가 말했다. 생각할수록 불안해. 지저분한 게 들어갈 것 같아. 나는 아이가 생길 즈음에는 다른 집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갖게 될 때가 아내의 기대보다 늦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기대보다 우리는 이 집에서 더 오래 살아야 할지 몰랐다. 예기치 않은 일은 벌어진다. 불행이란 늘 어느 그늘 아래 잘 준비되어 있는 제 몫 같다. 살아있는 다른 누군가를 만들자는 말이 내게는 걱정이었다. 아내에게도 걱정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다시 되짚을 뿐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살아있어. 나는 내 죽어가는 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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