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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수인의 호수토리 May 30. 2020

1인자가 되고 싶었던 스카티 피펜

하지만 피펜이 영원히 '2인자'로 기억되는 이유

# 6개의 챔피언십 반지

# 역대 최고의 윙디펜더

# 포인트 포워드

# 염가계약


그리고 # 2인자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방영 중인 ESPN의 '라스트 댄스 (THE LAST DANCE)' 다큐 주인공 중 한명, 스카티 피펜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5가지 키워드라 할 수 있겠다.


'라스트 댄스'는 미국에서 회당 평균 565만명의 시청자수를 기록하며 스포츠 다큐의 역사를 새로 썼다.


6개의 NBA 챔피언십 반지 외에 ALL-NBA 1st TEAM 3회, ALL-DEFENSIVE 1st TEAM 9회, '94 올스타전 MVP, '92 드림팀 I 및 '96 드림팀 II 멤버, '97 위대한 NBA 선수 50인 선정 등 피펜의 NBA 커리어는 개인, 팀 구분 없이 단연 위대했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업적에도 불구,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이클 조던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 2인자라는 수식어 역시 피펜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평생 로빈으로 살 것만 같았던 피펜에게 단숨에 배트맨으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가 생겼으니,

바로 조던이 잠정 은퇴한 93년 후 당당히 팀의 'THE MAN'으로 등극했던 '93~'94 시즌이었다. 


"이제 불스의 배트맨은 피펜입니다.(?)"




# 93~94 로빈의 홀로서기


조던의 은퇴 후 시카고 불스는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93~94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필 잭슨 감독조차 훗날 인터뷰에서 정규시즌 40승 정도만 기대했다고 얘기했을 정도였으니..조던의 뒤를 이은 선발 슈팅가드 피트 마이어스는 평균 24.8분 출전시간 및 7.9득점을 기록했으며, 새로 합류한 크로아티아 출신 토니 쿠코치와 호주 출신 룩 롱리와 에 대한 기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한없이 낮은 기대치에도 불구, 93~94 불스는 정규시즌에 무려 55승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다. 정규시즌 55승은 불스 첫번째 쓰리핏의 마지막 92~93 시즌의 57승과 비슷한 수준의 기록이며, 만약 피펜이 부상으로 10경기를 결장하지 않았더라면 전 시즌보다 더 좋은 기록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스의 돌풍의 중심에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배트맨' 스카티 피펜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94 올스타전 MVP 트로피를 들고 있는 피펜 (29점 11리바운드 4스틸 기록)


93~94 시즌 피펜은 정규시즌 MVP 3위, ALL-NBA 1st TEAM, ALL-DEFENSIVE 1st TEAM, 올스타 게임 MVP 선정 등 개인이 기록 가능한 각종 수상 부문에서 리그 최상위급 선수였다. 정규시즌 평균 스탯인 22.0 PPG, 8.7 RPG, 5.6 APG, 2.9 SPG는 NBA 역대 최고급이었다. 특히 팀 에이스인 동시에 2.9개의 스틸을 기록하면서 투웨이 플레이어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 NBA 역대 최고 스몰 포워드의 29세 기준 평균 스탯


- 엘진 베일러 (62-63) : 34.0 PPG, 14.3 RPG, 4.8 APG

- 존 하블리첵 (68-69) : 21.6 PPG, 7.0 RPG, 5.4 APG

- 줄리어스 어빙 (78-79) : 23.1 PPG, 7.2 RPG, 4.6 APG, 1.7 SPG

- 래리 버드 (84-85) : 28.7 PPG, 10.5 RPG, 6.6 APG, 1.6 SPG

- 르브론 제임스 (12-13) : 26.8 PPG, 8.0 RPG, 7.3 APG, 1.7 SPG

- 스카티 피펜 (93-94): 22.0 PPG, 8.7 RPG, 5.6 APG, 2.9 SPG


특히 피펜의 첫번째 홀로서기 시즌이 단순히 숫자를 능가하는 임팩트를 가졌던 이유는,  뛰어난 개인 스탯과 더불어 팀 컨셉 안에서 팀 플레이의 효율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내 커리어상 가장 효율적인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바로 93~94 불스의 트라이앵글 오펜스었고, 그 중심에는 포인트 포워드로서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진두지휘한 스카티 피펜이 있었다."

- 텍스 윈터 어시스턴트 코치, TNT 인터뷰 중 -


"마이클 조던은 패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잦았고, 샤킬 오닐은 오펜스 개념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코비 브라이언트는 필요 이상으로 돌파를 자주 시도했다. 내가 지휘했던 슈퍼스타들은 '스카티 피펜'을 제외하면 모두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이해 및 이행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 필 잭슨 감독, ESPN 인터뷰 중 -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아버지' 텍스 윈터 어시스턴트 코치와 필 잭슨 감독


93~94 정규시즌 기준, 개인 기록과 팀 성적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피펜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조던이 없는 불스를 플레이오프에서 '1인자'로서 리드하는 것이었다. 커리어 최초의 도전이었던 만큼 전 세계의 관심은 피펜의 활약 여부에 집중되고 있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였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상대로 손쉬운 3-0 승을 거둔 후 시카고 불스가 2라운드에서 맞이한 상대팀은 팻 라일리 감독이 이끄는 뉴욕 닉스였다.


닉스는 1년 전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불스 상대로 시리즈 2-0 리드 후 불스에게 연속 4경기를 내리 내주며 결국 2-4 로 역전패했던 뼈아쁜 기억이 있었는데..


'93 불스-닉스 시리즈 5차전 경기 막판 4차례 연속 블락당하며 닉스의 패를 주도(?)했던 찰스 스미스




# 홀로서기의 시험대

(1994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닉스 vs 1인자가 되고 싶었던 피펜의 불스


1차전은 90:86, 2차전은 96:91로 닉스가 힘겹게 승리하며 홈코트 어드밴티지 방어 성공, 이제 시리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시카고 홈구장인 시카고 스태디엄*으로 이동한다.

*시카고 스태디엄은 94~95 시즌부터 신구장 유나이티드 센터로 대체


홈에서 시카고는 3차전 3쿼터 종료 시점에서 19점차로 리드하며 손쉽게 승리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닉스의 막판 추격과 불스의 슈팅 난조로 경기는 종료 1.8초 남기고 동점 상황이었다.


마지막 포제션은 불스의 것이었고, 시카고 스태디엄 관중의 시선은 피펜에게 주목되었다. 'THE LAST SHOT'이 팀 에이스인 피펜의 몫이라는데 그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필 잭슨 감독이 그려낸 마지막 플레이의 주인공은 피펜이 아닌 토니 쿠코치였다. 이에 피펜은 잭슨 감독의 결정에 엄청난 불만을 표시하며 코트 복귀 보이콧을 선언하고, 당황한 불스 코치진과 잭슨 감독이 다시 한번 타임아웃을 부르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코트 복귀 보이콧을 선언한 스카티 피펜


2차 타임아웃에서도 피펜이 코트 복귀 지시에 불복하자 결국 잭슨 감독은 피펜 대신 피트 마이어스를 투입하여 인바운드 패스를 쿠코치에게 연결하는 전략을 짜게 되는데, 패스를 받은 쿠코치의 턴어라운드 점퍼는 그림같이 림을 가르면서 불스가 승리하게 된다.


비록 불스가 경기를 승리했지만, # 피펜게이트로 인해 어색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서 불스 선수들은 승리를 맘껏 기뻐하지도 못한 채 코트를 퇴장하여 락커룸으로 복귀한다.


'더 라스트 댄스'를 통해 밝혀진 당시 상황에 대한 피펜의 동료들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사건 직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실망감과 배신감이 들었다고 한다. 선발 센터 빌 카트라이트는 라커룸 내 동료들 앞에서 눈물과 함께 다음 문장을 남겼다.


'SCOTTIE, YOU LET ALL OF US DOWN'

(스카티, 넌 우리 모두를 실망시켰어)


3차전 종료 후 현지 시카고 트리뷴지의 헤드라인 역시 당시 상황을 잘 표현해준다.


3차전 다음날 시카고 트리뷴지 헤드라인


'94 불스-닉스 플레이오프 시리즈 스코어

- 1차전  닉스 90 : 86 불스

- 2차전  닉스 96 : 91 불스

- 3차전  닉스 102 : 104 불스

- 4차전  닉스 83 : 95 불스

- 5차전 : 닉스 87 : 86 불스

- 6차전 : 닉스 79 : 93 불스

- 7차전 : 닉스 87 : 77 불스


'94 불스-닉스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결국 닉스가 승리하게 된다. 5차전 종료 직전 휴버트 데이비스의 점프샷 및 피펜의 이에 대한 파울 오심 논란, 6차전 피펜의 패트릭 유잉 인유어페이스 덩크 등 각종 헤드라인급 이슈가 있었지만 시리즈를 목격한 팬들에게 가장 내리깊게 남아있는 사건은 # 피펜게이트일 것이다.


팀의 승리에 앞서 동료들의 신뢰를 잃은 피펜


은퇴한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가장 위대한 '2인자'라는 평가를 받는 스카티 피펜. # 피펜게이트가 없었더라면 '1인자'도 될 수 있는 '2인자'로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94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3차전에서 쿠코치의 게임위닝샷에 대한 인바운드 패스를,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피트 마이어스가 아닌 피펜이 찔러 넣어줬다면 말이다.


이렇게 피펜의 93~94 홀로서기 시즌은 창대한 시작 BUT 미약한 마무리로 역사에 남았다.




# 피펜게이트, 그 이후


1인자로 거듭나기 위한 스카티 피펜의 도전은 94~95 정규시즌에도 계속되었으나, 뛰어난 개인 스탯에 반해 팀의 성적은 50%대의 승률로 기대 이하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시즌 막판 'I'm Back'을 외치며 복귀를 선언한 1인자 마이클 조던으로 인해 피펜은 불스의 첫번째 쓰리핏 시절과 동일하게 다시 2인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조던의 컴백과 함께 다시 시작된 피펜의 '2인자' 역할


'The Last Dance'의 배경 97~98시즌 포함 불스의 두번째 쓰리핏이 완성된 후, '염가계약'의 아이콘 피펜은 휴스턴과 포틀랜드에서 MAX급 연봉*을 받게 된다.

* 휴스턴 이적 시 5년 67.2밀리언 달러 계약 체결


하지만 불스가 아닌 다른 팀의 져지를 입은 피펜은 이미 전성기가 지난 상태였다. 이미 진행 중이었던 등부상 및 무릎 문제는 피펜의 운동신경에 제동을 걸었다.


직장폐쇄로 인해 단축된 '99 시즌을 휴스턴에서 바클리&올라주원과 함께 했지만, 서부 컨퍼런스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를 상대로 1승 3패를 기록하며 탈락하고 만다.


전성기를 훌쩍 지난 시점에 뭉친 '99시즌 휴스턴 로케츠의 'BIG 3'


99~00 시즌부터는 소름끼치는 네임밸류의 선수들을 보유한 포틀랜드로 이적,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의 성과는 99~00시즌을 제외하면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2000년 결승전 진출 문턱에서 레이커스를 상대로 좌절했던 포틀랜드와 피펜은 NBA 역사에 7차전 4쿼터 15점차 리드를 날린 'What If' 케이스로 남아있으며, 피펜은 7차전에서 역대급 하이라이트의 반대편을 장식한 채 코트를 퇴장한다.


'00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 마지막 명장면 // 출처 : NBA.COM


그 후 피펜은 포틀랜드에서 3년을 더 뛰었지만 매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불스가 아닌 다른 팀에서 자신의 7번째 챔피언십 반지를 획득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피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03~04 시즌에는 불스로 컴백하여 멘토링 역할을 수행한 뒤, 87~88 시즌부터 17년간 이어진 NBA에서의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 '라스트 댄스'의 후폭풍


직장폐쇄로 인해 단축된 '99 정규시즌을 휴스턴에서 피펜과 함께 치뤘던 맷 불라드는 최근 'The Last Dance' 종영 후 아래와 같은 멘트로 미국 현지 언론의 집중을 받았다.


"피펜이 나와 함께 뛰었을 때 그는 자신이 로케츠의 팀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팀의 'The Man'이 되고자 노력했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When I did play with him, he wasn’t trying to be a Rocket. He was just trying to be the man, and it didn’t really work."


불라드의 발언은 '99 시즌 피펜이 찰스 바클리에게 날린 찌질한 비난*과 더불어 피펜의 '케미 브레이커'로서의 명성(?) 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조던이 내게 찰스 바클리가 우승에 대한 갈증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영 우승하지 못할거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바클리는 그의 돼지같은 엉덩이와 함께 플레이해준 내게 감사해야 한다."


비록 스티브 커를 포함한 '라스트 댄스'에 함께 출연한 피펜의 옛 불스 동료들이 피펜의 팀원, 친구으로서의 가치와 리더십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상황의 발단인 # 피펜게이트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마지막으로 피펜 본인이 '라스트 댄스'를 통해 # 피펜게이트에 대해 남긴 멘트.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었다면 좋았겠지만,

만약 내게 그때로 되돌아갈 기회가 주어지면,

난 아마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I wish it never happened,

but if I had a chance to do it over again,

I probably wouldn’t change it,”


'라스트 댄스'에 출연한 스카티 피펜의 모습


* '스카티 피펜' 스토리는 NBA ON AIR 시즌 5 에피소드 25 & 26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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