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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수인의 호수토리 Dec 31. 2020

앨런 아이버슨의 마지막 기회 (1부)

00~01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스토리

2001년 6월 6일. NBA 결승 1차전. 식서스 101 : 99 레이커스. 연장전 종료 55초 전.


우측 코너에서 볼을 전달받은 아이버슨. 자신의 디펜더인 타이론 루를 앞에 두고 크로스오버 드리블에 이은 스텝백 점퍼를 시도한다. 세상에서 가장 클린 한 형태로 볼이 림에 빨려 들어가자, 아이버슨은 자신을 저지하려다가 밸런스를 잃고 코트 바닥에 쓰러진 루 위를 사뿐히 건너 지나간다.


타이론 루 위로 건너 지나가는 앨런 아이버슨 (출처 : PHILADELPHIA INQUIRER)


전 세계 NBA 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가장 아이코닉한 순간으로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는 이 장면. 1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2001년 그때 그곳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전설로 거듭나게 될 'THE ANSWER'의 험난한 여정을 돌이켜다.




# 시작도 하기 전에 닥친 공중분해의 위기


앨런 아이버슨의 트레이드? 허구가 아닌 현실이었다.


2000년 오프시즌, 식서스 프론트 오피스는 아이버슨과 맷 가이거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네 명의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는 초대형 트레이드에 합의한다. 당시 ESPN 소속이었던 애널리스트 마크 스타인을 통해 훗날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이 트레이드에는 무려 12명의 선수들과 4개의 구단이 연결되어 있었다.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드 시나리오]

(1)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GET : 앨런 아이버슨, 맷 가이거

(2) LA 레이커스 GET : 앤써니 메이슨, 토니 쿠코치, 토드 펄러

(3) 샬럿 호네츠 GET : 제리 스택하우스, 크리스챤 레이트너, 트래비스 나이트

(4)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GET : 에디 존스, 글렌 라이스, 데일 데이비스, 제롬 윌리암스


당시 식서스의 구단주였던 팻 크로치가 아이버슨에게 직접 전화해 트레이드 소식을 전했으며, 래리 브라운 감독 역시 훗날 인터뷰에서 앨런 아이버슨의 트레이드 루머에 대해 사실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아이버슨은 대체 어떻게 필라델피아에 계속 남게 된 것일까? 아이버슨의 동료였던 맷 가이거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가이거의 6년 4,700만 달러 계약에는 본인이 트레이드될 경우 15%의 연봉 상승과 더불어 330만 달러 보너스 지급 권한이 삽입되어 있었는데, NBA 샐러리캡의 구조상 이 사각 트레이드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가이거가 이 특별권한을 미리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가이거가 트레이드 반대 의사를 표명하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고, 덕분에 이 트레이드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판타지 트레이드'로 남게 되었다.


판타지 트레이드가 결국 무산되면서 아이버슨은 지금도 우리에게 식서스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출처 : ESPN)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식서스와 아이버슨. 여기서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식서스는 왜 아이버슨을 트레이드하려 했던 것일까? 대체 왜? 




# 'ME, MYSELF AND I-VERSON'


전설의 1996 드래프트에서 당당하게 전체 1순위로 필라델피아 구단에 입단한 아이버슨. 1년 차부터 NBA 레전드 선수들과 비교되며 기대에 부응하는 온코트 퍼포먼스를 선보였지만, 오프코트에서의 평판은 결코 좋지 않았다. 비록 악의는 없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당당한 표현 방식 때문에 종종 논란이 되었던 그의 인터뷰는 이슈거리를 찾아다니던 현지 기자들에게 너무나도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나는 조던이 되고 싶지 않고, 버드나 아이재이아가 되고 싶지도 않으며, 그 어느 선수도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은퇴한 후에 거울 속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내 방식대로 성공했어'라고 말하고 싶다."

"I don't wanna be Jordan, I don't wanna be Bird or Isiah, I don't wanna be any of these guys. When my career is over, I want to look in the mirror and say I did it my way."

 - 앨런 아이버슨, ESPN 인터뷰 중 -


하이스쿨 시절부터 아이버슨을 졸졸 따라다녔던 '악동' 이미지에다가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 따위는 없는 듯한 자신감과 오만함 덕분에 필라델피아 지역을 제외한 기타 지역에서는 아이버슨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당시 휴스턴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었던 찰스 바클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버슨의 자기중심적인 행동과 발언을 꼬집으며 'ME, MYSELF AND I-VERSON'이라는 굴욕적인 닉네임을 선사한다.


아이버슨과 소통 중인 식서스의 식스맨 애론 맥키 (출처 : NBA.COM)


팀 내에서의 갈등도 고조되고 있었다. 아이버슨의 두 번째 시즌이었던 97~98 시즌에 식서스에 합류한 래리 브라운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올드스쿨한 마인드를 가진 완벽주의자였다. 이에 반해 세상에서 가장 자유분방하고 자기중심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아이버슨. 이 둘의 관계는 시작부터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버슨의 플레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목표는 이 팀이 하나가 되어 이타적으로 플레이하고 경기와 동료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I didn't like the way Allen played. My goal was to try to get us to become a team, to play unselfishly, to try to respect the game and the teammates. But I didn't think it was possible."

- 래리 브라운 감독, 'On the Way to the NBA Finals' 다큐멘터리 중 -


시작부터 충돌을 반복했던 브라운 감독과 아이버슨 (출처 : PHILADELPHIA INQUIRER)


아이버슨의 팀 훈련 지각 및 불참 관련 이슈도 점점 부각되었다. 아이버슨의 레전더리한 'PRACTICE' 발언이 탄생한 것은 2002년이었지만, 브라운 감독과 아이버슨이 현지 언론을 통해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에 아이버슨이 공개한 갱스터 힙합 싱글* 가사가 미국 현지에서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자, 이제는 필라델피아 지역에서조차 아이버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버슨의 가장 큰 지지자였던 식서스 구단주 팻 크로치 역시 더 이상 아이버슨의 편만 들어줄 수 없는 상황.

* 아이버슨의 앨범 'JEWELZ'에 수록된 첫 번째 싱글 '40 BARS'의 가사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욕설은 물론이고 동성애 관련 공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적 논란이 점점 가중되는 가운데, 데이빗 스턴 총재까지 직접 나서서 NBA 사무국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며 비판에 가세하게 된다. 결국에는 아이버슨이 손을 들고 앨범 발매 자체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상황이 정리된다. 


라커룸에서 대화 중인 팻 크로치 구단주와 앨런 아이버슨 (출처 : CBS)


위와 같은 이슈들이 누적되면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식서스 운영진이 냅다 눌러버린 아이버슨 트레이드 단추. 하지만 결과적으로 트레이드가 불발이 되면서 식서스와 아이버슨의 불편한 프리시즌이 개막을 앞두고 있었다.




# 불편한 동거의 시작


감독을 원하지 않는 선수. 선수를 원하지 않는 감독. 하지만 트레이드가 불발이 된 이상 좋든 싫든 함께 해야 했던 아이버슨과 브라운. 이들은 서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올해는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단순히 농구를 하는 것 이상으로 팀의 주장이 될 수 있는지, 리더가 될 수 있는지, 프로답게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임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This is gonna be the most important year of my career, because all eyes on me this year. Everybody wants to see if I can be the captain, if I can be a leader, if I can be a professional, besides just playing basketball. And I'm up to the task'

- 앨런 아이버슨, 'RADIO PA' 인터뷰 중


개인의 성적이 아닌, 오로지 팀의 성적만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던 00~01 시즌. 아이버슨이 이끄는 식서스는 10승 0패라는 놀라운 기록과 함께 시즌을 시작하며 리그 전체 1위에 등극한다. 연승 기간에 상대했던 팀들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제외하면 모두 컨텐더이거나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한 팀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주목을 받았던 성적이었다. 


시즌 평균 3.7개의 블락을 기록하며 올스타로 거듭난 센터 티오 래틀리프. 묵직한 인상에 걸맞은 묵묵한 허슬러 역할을 수행한 11년 차 베테랑 포워드 타이론 힐. 아이버슨을 제외하고 팀 내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식스맨 애론 맥키. 오로지 수비 하나만을 위해 살아 숨 쉬는 포인트가드 에릭 스노우 등. 이들은 종종 30개를 거뜬히 상회하는 야투를 시도하는 아이버슨의 플레이에 불만을 갖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팀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클러치 상황에서도 종종 벤치의 가장 끝단에 앉아 대기하는 선수들을 투입한 브라운 감독의 폭넓은 선수 기용 방식 역시 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경기에서 0득점에 그쳐도 수비만 잘하면 행복하게 잠들 수 있었던 에릭 스노우 (출처 : THE SIXER SENSE)


[식서스의 첫 10경기 성적]

식서스  101 : 72  닉스

식서스  104 : 98  랩터스

식서스    87 : 80  매직

식서스    84 : 82  히트

식서스  103 : 94  피스톤즈

식서스    84 : 82  팀버울브스

식서스    85 : 83  셀틱스

식서스  107 : 98  캐벌리어스

식서스    94 : 73  히트

식서스  114 : 90  셀틱스


표면상으로 완벽해 보였던 식서스의 시즌 스타트.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다시 한번 찾아온다. 서로 간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던 아이버슨과의 마찰에 지칠 대로 지친 브라운 감독이 돌연 팀 이탈을 선언하고 떠나 버린 것이다. 당시 식서스가 18승 6패로 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브라운과 아이버슨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뻔했던 상황에서 브라운 감독에게 먼저 손을 뻗은 이들은 다름 아닌 식서스의 베테랑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브라운 감독이 밥먹듯이 강조하는 'PLAY THE RIGHT WAY' 철학에 대한 무한 신뢰를 다시 한번 맹세하는 동시에, 아이버슨을 비롯한 식서스 선수들과의 관계에 있어 자존심을 조금만 양보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결국 마음을 돌린 브라운 감독은 아이버슨과 자기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다.




# 마지막 기회


브라운 감독이 팀에 다시 합류한 뒤에도 식서스의 고공행진은 계속되었다.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식서스의 성적은 36승 14패로 동부 1위. 브라운과 아이버슨은 각각 동부 올스타팀의 감독 및 선발 선수 자격으로 워싱턴에서 개최된 2001 NBA 올스타전에 참여한다. 4쿼터에만 무려 15점을 몰아넣으며 동부팀의 승리를 이끈 아이버슨. 그는 올스타전 MVP 트로피 수여식에서 브라운 감독을 찾으며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끝없이 반복될 것만 같았던 아이버슨과 브라운 감독의 갈등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2001 올스타전 MVP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아이버슨 (출처 : THE SIXER SENSE)


훈훈하기 그지없는 분위기로 마무리된 올스타 브레이크. 전력을 가다듬은 식서스는 이제 리그 전체 1위 자리를 지키는 목표와 함께 시즌 후반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직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올스타 센터 티오 래틀리프가 팔목 부상을 당하면서 장기간 결장하게 된 것이다. 아이버슨의 화력만큼이나 중요했던 래틀리프의 샷블락킹과 수비에서의 존재감을 감안했을 때, 식서스가 현 로스터를 바탕으로 우승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식서스의 프론트 오피스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WIN NOW'를 노릴 것이냐. 아니면 결국 'MAYBE NEXT YEAR'인 것이냐.


그리고 식서스의 선택은 'WIN NOW'였다.


[식서스의 올인 트레이드]

(1) 애틀랜타 호크스 GET : 티오 래틀리프, 토니 쿠코치, 나지 모하메드, 페페 산체즈

(2)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GET : 디켐베 무톰보, 로숀 맥로드


"무톰보가 우리가 우승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I'd be lying to you all if I didn't say this guy could help us win a championship." 

- 앨런 아이버슨, ESPN 인터뷰 중-


"우리는 결승전 진출을 위해 노력 중인 만큼, 지금 당장 반드시 최대한 많은 경기를 이겨야 한다."

"We're trying to get out of the East, and it's imperative for us to win as many games as we can right now."

- 래리 브라운, ESPN 인터뷰 중 -


27세의 전성기 나이에 있는 올스타 센터 티오 래틀리프를 내주면서 데려온 선수는 바로 NBA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디켐베 무톰보. 그의 나이는 이미 34세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식서스 구단에 오히려 손해였지만, 'WIN NOW'를 위해서 이보다 더 확실하게 식서스의 팀 컬러에 어울리는 옵션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는 필라델피아에서만 볼 수 있게 된 'NOT IN MY HOUSE' (출처 : ESPN)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식서스는 5연패를 기록하는 등 삐꺽 대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국 56승 26패의 기록과 함께 동부 콘퍼런스 1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한다. 신데렐라처럼 등장하여 깜짝 활약한 식서스에게 각종 수상이 집중되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아이버슨은 정규시즌 'MVP'. 브라운은 '올해의 감독'. 무톰보는 '올해의 수비수'. 맥키는 '올해의 식스맨'. 식서스는 NBA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개의 구단에서 상기 네 개의 상을 싹쓸이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아이버슨에게 정규시즌 MVP 트로피를 전달하는 데이빗 스턴 총재 (출처 : NBA.COM)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00~01 시즌에 그들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기회를 살린 브라운 감독과 아이버슨. 이제 이들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파란만장한 2001 플레이오프 무대가 펼쳐진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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