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 미루고 미루던 옷장 정리를 했다. 작년에는 제주도로의 잦은 출장 때문에 짐을 싸고 풀기에 바빠 여름옷과 겨울옷의 배치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냈다. 재작년 사실 영국에서 돌아오고 귀국 짐을 풀며 대청소를 했을 때 이후로 옷장 속 옷들의 배치를 대대적으로 바꾼 것은 손에 꼽는다.
왜인지 조금은 부끄러운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늘 옷을 입고 나를 꾸미는 것을 참 좋아했고 평범한 것보다는 ‘딱 보아도 ’나‘라는 사람이 입을 것 같은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그 정도가 과하기도 하고 때때로는 ‘화려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는 첫인상을 주어 친해지고자 선뜻 다가오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려선 종종 그 지점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고 그 선입견에 치어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한해 두 해 지나고 보니 지금은 어느 정도 타협을 하기도 한 것 같고 그 와중에도 ‘나다움’은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실 나의 이 모든 취향은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되어 두 분의 취향과 굉장히 닮아있기도 하다. 두 분 다 옷에 관심이 많으시다 보니 본인들의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항상 잘 구매하시고 코디하시는 편이다. 그리고 그만큼 동생과 나의 ‘스타일’ 그리고 ‘표현함’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제안해주시고 지원해주셨다. 특히 엄마는 나보다 트렌드를 빠르게 이해 해시는 경우도 많고, 엄마의 안목만큼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취향이 굉장히 비슷하고 주변인들에게 엄마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듣는다. 이목구비를 쏙 빼닮았다기보다 취향으로 인해 풍기는 이미지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엄마의 옷장을 열어 옷을 자주 뺏어 입기도 한다.)
요즘 들어선 집에서 일을 하게 되다 보니 집에서 편한 옷들, 외출 또한 업무차 잠시 미팅을 나가거나 교외로 답사를 나가는 일들이 많다 보니 활동성이 좋은 옷들을 입기에 그다지 옷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있다. 요리조리 돌려 말했지만, 그럼에도 관심이 있는 만큼 이미 가지고 있는 옷들도 참 많다.
옷이 많은 만큼 정리가 잘되어져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은 입던 것 옷걸이에 걸려있는 것들만 위주로 입게 된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정리를 미뤄왔다. 그러다 지난주 큰마음을 먹고 겨울옷들과 여름옷들의 배치를 바꾸고 수년 전에 사둔 안 입는 옷들을 정리했다.
정리를 실행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요즘 나의 마음에 있다. 행사들과 사업들을 만들려다 보니 아직까지도 기획단계에서 새롭게 장을 펼쳐나가는 건들도 많지만, 이전에 지원해두거나 후원을 요청해둔 행사들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차근차근 대부분 선정 및 지원 확정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냐.
그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 중에 많은 상황과 이해관계에 변화가 있었고,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사적인 감정을 털어놓는 친구들과의 경계가 모호했던 내게 그 경계에 맴돌며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들이 지속해서 벌어졌다. 직무의 특성상 워낙 다양한 성격의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사실 이제는 좀 단단해지지 않았나 싶었는데, 이번에 찾아온 그 시간이 하나도 안 괜찮았나 보다. 사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각자 그냥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였을 뿐인데 나 또한 그러했을 텐데 아직 원인을 콕 집어내기 어려운 우울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람들로부터 힘을 받아 웃으며 모든 상황을 맞이할 나라는 것을 알기에 여기에나마 털어놔 본다.
무언가를 정리하다 보면 그 마음도 정리되고 잡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아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엄마와 옷을 하나둘 꺼내고 위치를 바꾸고 곱게 접어 넣고. 그 과정에서 내가 잊고 있었던 다수의 옷을 찾기도 했다. 요즘 날씨에 입을만한 옷들을 접근이 편리한 옷장에, 두꺼운 겨울옷들을 일부는 상자에 넣어 창고로 일부는 손이 잘 가지 않는 옷장에 넣고 나니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몸을 움직이고 나니 그리고 정리된 방과 옷장들의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직 입어보지도 못한 새 옷들, 잊고 있던 옷들, 이 계절 지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옷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왜인지 모를 설렘도 느껴졌다.
+ 옷장들의 문에 이렇게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의 홍보물 혹은 발간물의 일부를 붙여두기도 하는데, 새롭게 벌어지게 될 일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붙어있던 것들 중 일부를 정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