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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닮은 Aug 29. 2023

싫어하면서 닮는다.

엄마 얘기다. 나는 엄마와 그리 좋은 모녀지간이 되지 못한다. 좋을 때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간이 짧다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는 거의 말을 안 하다시피 했고, 대학에 올라가서야 간섭이 그나마 적어지면서 독립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중학교 땐가 엄마한테 했던 이야기에 엄마의 대답이 생각난다. 엄마는 나를 엄격하게 자신보다 낮은 존재로 대했다. 동등하다고 느낀 적이 없고, 수하에 있는 느낌이 힘들어서 용기 내 한 이야기였다. "엄마,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면 안 돼?" "엄마랑 네가 어떻게 친구처럼 지내니? 나중에 성인 되면 그때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자, 쇼핑도 가고 하면서." 말 그대로 딱 잘라 거절이었다. 너는 딸이고, 나는 엄마야.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에 상위버전이랄까.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까지도 엄마랑 싸워본 적 없고, 그저 혼나는 대상이었다. 싸웠다는 표현을 쓰기라도 하면, 네가 무슨 나와 싸운 거니? 나한테 혼이 난거지!라고 또 정정해 주신 분이 엄마였다. 우리 집 독재자라는 표현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스스로 썼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일이 기억난다. 엄마한테 정말 억울한 이유로 호되게 혼이 나고 방에 들어와서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고 있었다. 어떻게해서든 이 감정에 걸맞은 표현을 해야지만 진정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한 선택은 내가 아는 모든 욕으로 엄마를 욕하는 것이었다. A4용지 2장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6학년 짜리가 욕을 얼마나 많이 안 걸까. 나는 1장을 앞뒤로 빼곡히 하고도 2장을 반 남겨놓고 까맣게 채웠다. 막상 그렇게 적어놓고 제일 찾기 어려운 책장 맨 아래에 두꺼운 앨범 같은 것들 사이로 숨겨놨다. 혹시라도 엄마나 누구든지 발견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우리 집은 이사를 갔다. 짐정리는 대체로 내가 했지만, 엄마가 마무리를 했다. 이사를 하고 몇 주가 지나 문득 예전에 적어뒀던 데스노트(엄마 욕)가 떠올랐다. 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누군가 발견했다는 말도 못 들었다. 엄마가 봤다면 크게 상처를 받을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이 때는 아마 사이가 나쁘지만은 않은 때였나 보다. 대학생이 되면 내게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엄마는 정말 간섭을 덜 했다. 늦게 들어오는 것만은 꼭 뭐라고 했지만, 그 정도면 이전의 간섭과 억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내 대학시절은 가장 바빴다. 밖에서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건전한 활동과 한 번쯤 해보고 싶은 클럽에 가본다거나 하는 유흥도 조금은 경험해 본 시기였다. 내가 이렇게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 친구들도 상상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첫 시험을 망치고 엄마가 너무 실망을 했다. 나도 무서웠다. 공부를 꽤나 잘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시험을 망쳤으니 밖에 나가 놀지 않겠다고 먼저 이야기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나는 시험을 잘 못 보면 밖에 나가 놀지 못하는 신세에 처했다. 새장 속에 갇힌 새였다. 덕분에 친구들은 우리 엄마를 늘 무서워했고, 나중에는 나에게 아예 놀러 가자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하면 다음번에 시험을 잘 치를 줄 알았다고 했다. 모든 양육이 그런 방식이었다. 따뜻한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두 기억하는 편이고,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자신은 모든 것을 희생한 엄마라는 타이틀을 화낼 때마다 쓰곤 한다. 


우리 엄마의 그중에서도 가장 악습은 자신에게 맞추지 않고, 빈정이 상하면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심지어 몇 년씩이나 말을 안 한다는 것이다. 나랑은 고등학교 때 그런 시기를 보냈다. 2년간 대화를 하지 않았다. 말이 되나 하겠지만 정말이다. 동생도 고등학교 시절 엄마랑 거의 3년을 말하지 않고 지냈고, 아빠는 말할 것도 없다. 유일하게 그것을 비껴간 것은 자신을 많이 닮은 첫째 딸뿐이다. 


우리 집에 요새 큰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첫째 딸의 결혼식이다. 첫째 딸은 엄마를 빼닮아서 나랑 잘 맞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첫째 딸을 많이 좋아했는데, 결혼을 앞두고는 관계가 최악에 다다르고 있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 엄마와 비슷하게 사이가 안 좋아지고 있는데, 싸우면 나도 언니도 말을 안 한다. 엄마의 악습을 유전받았다. 이 사람들이랑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 집에서 나는 이렇게 지낸다. 엄마랑도 싸웠다. 이제는 싸웠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지는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유 없는 짜증과 성질에 진절머리가 나 입을 닫았다. 싫은 것 여러 가지 중 가장 시달렸던 말 하지 않는 것을 내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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