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상담사3급 자격연수를 마치고
J선배의 제안으로 엉겁결에 청상사 스터디에 참여했지만, 하루 만에 발을 뺐다. 가만 세어보니 15년쯤 지난 일이다. 말이 되는 세월인가 싶어서 손가락을 꼽아봐도 틀림없다. 비슷한 시기에 독서 모임에서 만난 L누나는 자기계발서를 삐딱하게 읽고 품평하는 나에게 현명해지라고 직언했는데, 최근에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었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 개인을 다루는 상담이나 임상보다 중요하고 지속성 있다는 도그마에 갇혀서 살아왔다.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평면적인 신념은 깨지고 녹아내렸다. 법으로 정한 청년기를 떠나보내고 다시 구직활동을 하면서, 실무자가 아닌 (중간)관리자로서 경력과 활동 외에 증명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함을 실감하였다. 사회조사분석사도 취득하였고 데이터분석 공부도 해보았지만, 애써 외면하고 합리화한 상담을 다시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오래전 시험에 합격한 바깥양반 A는 대면 연수에 함께 참여하자며 기다려 주었다. 서로 다른 조에 배정되었지만, 매일 함께 통학하듯 다니며 새로운 맛집을 찾고 각자 배운 내용을 나누는 과정이 즐겁고 유익했다. 연수 다음 날이 A의 생일이자 13번째 기념일이라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코로나에 다시 걸려 수포가 된 사실은 아쉽다. 격리 해제와 동시에 개학이라니...
청상사 연수가 얼마나 좋았는지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같은 분야 국가자격증인 직업상담사와 임상심리사는 문제은행식 필기(1차)와 필답식 실기(2차) 시험만으로 취득할 수 있다. 청상사는 필기와 구술 면접 그리고 100시간 연수를 이수해야 자격을 부여하는데, 최소한의 지식과 인성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을 사례와 실습 위주의 연수를 통하여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으로 배출하는 과정으로 다른 자격과 차별화한다. (그런데 이제 연일 뒤풀이 체력 검정을 곁들인...)
연수도 대면과 비대면으로 나뉘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대면도 합숙과 비합숙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합숙으로만 진행하다 보니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은 연수 기간 주변에 숙소를 잡거나 지인에게 신세를 지며 머물렀다. 방학 기간이라 A와 같은 전문상담교사 선생님들 비율이 높았는데, 이미 임용고시라는 끝판왕 시험을 통과한 분들이 학생들에게 더 전문적인 상담자가 되고자 방학을 반납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 연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서 자격증을 딴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
집단상담, 개인상담, 청소년 발달문제(가정 밖, 학교 밖) 시간이 특히 좋았고 매체상담 실습에서 한때 키보드 워리어였던 경험과 흥미가 사이버상담에 강점으로 작용한다는 발견도 했다. 집단상담에서 주인공 작업은 하지 못했지만, 집단원들의 이슈와 소심하게 역동하면서 부족하나마 통찰과 기술을 얻었다. 개인상담 시간은 구조화한 상담 기본기를 반복하며 기술이 몸에 배는 시간이었다. 공통적으로 조급하지 말고 기다리는 기술(머물러주기, 침묵)이 인상 깊었다.
강사분들 면면도 그렇거니와 훌륭한 조원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에 안전한 공간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항상 갈구하는 좋은 대화란 결국 상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상생활에서 숨기고 겉돌고 일방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사소통에 시달리며 항상 답답했는데, 총명한 선생님들과 상담기법을 통해서 대화하니 갈증이 가셨다. 9월부터 시작하는 대학원 수업도 기대된다. 상담을 업으로 계속할지는 미정이나, 봉사활동으로나마 배우고 익힌 바를 나누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이번 연수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사용하는 닉네임 "낌새"를 지어준 J선배에게 늦은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