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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낌새 Aug 21. 2023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흐르는 언어

루소의 언어기원설과 세르의 자연계약설에 관한 단상

<Microsoft Bing Image Creator(AI)로 생성한 이미지>


축제 일정보다 일찍 개화한 벚꽃이 봄비에 시나브로 져버렸다. 뜻밖에 주단이 된 꽃잎들을 보며 걷다가 어김없이 상념에 잠긴다.


언어로 말미암은 문명은 같은 언어를 나누는 사이로 교감할 대상을 한정한다. 언어권, 나라, 지역, 세대, 커뮤니티 등 진정한 대화가 가능한 단위는 날로 좁아진다.


한 번은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만났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와 말버릇 그리고 어조까지 놀랍도록 닮아서 누가 누구를 흉내 내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이런 싱크로율은 묘한 위화감을 자아냈다.


루소는 몸짓언어로 나눌 수 없는 정념을 토해내기 위해서 음성언어가 발전했다고 보았다. 합리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합리적인 인간들끼리로 정념을 토할 대상을 한정한다. 시대적 한계로 그 인간조차 백인 남성에 머문다.


김홍중 교수는 SDF2020에서 <사회계약을 넘어 자연계약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문명사적 성찰>을 주제로 강의했다. 미셸 세르의 자연계약을 인용하며, 코로나 이후 문명에 인간과 비인간(물질) 사이 자연계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가 내뱉은 음성언어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인간은 입말을 통해서 감정을 나누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이전까진 교감할 수 있었던 다른 존재들과는 시나브로 유리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 아프다 말하지 못하는 모든 대상과 인간을 분리했다.


미생물, 식물, 동물, 지적 장애인 그리고 이방인들과 정념을 나눌 수 없게 됐다. 나는 이미 그런 상태에서 태어났는데, 축제 일정보다 며칠 일찍 져버린 벚꽃과 그것을 탐색하며 산책하는 반려견들을 보며 부조리함을 느낀다. 입말이 없었다면 인간과 비인간은 훨씬 막역하지 않았을까.


작년에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비건을 다룬 에세이를 읽었지만 여전히 미비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공개적으로 육식을 전시하지 않는 등 남들 몰래 작은 실천을 하지만 거시적인(molar) 변화라기엔 역부족이다. 다만 고기를 요리하는 일에 흥미를 잃고 죽기 전의 삶을 떠올릴 뿐이다. 아프다를 음성언어로 발화하지 못하는 비인간을 심상으로 바라본다. 이런 분자적인(molecular) 변화는 오직 하나의 정념을 낳는데, 바로 부끄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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