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cy Jul 14. 2023

한때는 소녀였던 우리

우당탕탕 공동육아 여행기 1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마침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대학생 시절에도 자주 만나게 되었고, 서로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가깝게 지냈다. 외출 준비를 하고 나설 때면 엄마가 '또?(A 만나러 가니?)'라고 물으면 난 끄덕끄덕 할 정도였다. 그런데 서로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우리들이 사는 지역은 더욱 멀게만 느껴졌고 일 년에 한 번 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나의 친정집과 그 친구의 신혼집은 불과 10분 거리인데도 말이다.


 어느덧 내 아이도 6살이 되었고, 친구의 딸도 4살이 되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제법 편해졌다,라고 느낄 무렵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던 것이, 일이 커지고 커져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떠나는 제주도  3박 4일 여행이 되었다.


 나는 아이와 둘이 제주도에 보름살이를 했던 경험도 있고 평소에도 종종 아이와 단둘이 다니는 걸 즐겼던 편이라 나름 자신만만했던 것 같다. 친구도 남편이 출장이 잦은 편이라 아이와 단둘이 지내는 일들이 많았던 참이었다. 우리 둘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제주도행 티켓을 끊고 숙소를 예약했다.


 나는 포항에서, 친구는 부산에서 각자 출발하여 제주도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가움과 설렘 가득한 첫 만남.

... 은 잠시였다.


 렌터카에 친구 모녀를 태우고 아쿠아리움으로 출발했다. 약 한 시간은 달려야 하는 코스였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무사히 제주공항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신나 있었다. 조잘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우리끼리의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약 10분 간은.


 얼마쯤 가지 못해 친구의 딸아이는 울며 속이 답답하다, 배가 아프다, 차에서 내리고 싶다 등의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우동을 먹었는데 그것이 체한 건지, 비행기를 처음 타봐서 멀미를 한 건지 이것저것 이유를 생각해 봐도 뾰족한 답 없었다. 20분 정도 흘렀을 때 친구가 차를 세워줄 수 있겠냐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딸아이는 친구의 바지에 구토를 한 상태였다. 갓길에 정차한 후 물티슈와 여벌바지를 꺼내 간단히 처리를 했다. 친구는 바지에 묻는 토사물을 닦으며 딸에게는 괜찮다는 말만 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출발하고 멈춰서 토하기를 네다섯 번. 가는 길에도 친구는 연신 엄마가 괜히 우동을 먹여서 그렇다, 엄마가 잘못했다, 애를 고생시킨다 등등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우리의 여행은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목적지였던 아쿠아리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차에서 내리자 컨디션이 회복된 아이는 즐겁게 관람했다. 잠시 인어의 쇼를 보기 위해 공연장에 앉아 각자 아이들을 옆에 끼고 앉았을 때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화장기 없고 왠지 수척해 보이는 얼굴. 커다란 기저귀 가방에서 물을 꺼내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가방에서 나오는 것들은 아이의 유기농 간식, 손수건, 기저귀, 물티슈 등등. 친구는 원래 보부상 스타일이라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 넣고 다니던 편이었는데, 아마 5년 전 친구의 가방에는 화장품이 가득 든 파우치가 있었을 것이다.


 잠시동안, 친구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다시 숙소로 가는 길에도 차를 타고 가다 멈춰 서서 아이의 속을 달래기를 여러 번,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 두 모녀커플은 숙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10시가 넘어서야 친구와 나, 둘만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한 캔 씩 들고 무사히 숙소로 온 것을 자축했다. 다음날의 첫 일정은 약국을 방문해서 어린이용 멀미약을 사는 것으로 정하며.


 나는 친구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집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고 끝까지 일정을 함께 해준 것에 고마워했고 친구는 우리가 하루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한 것에 뿌듯해했다.


 친구는 결혼 전 복지사로 일하며 병동에서 정신건강 사회복지사 수련과정까지 마쳤고 대학원도 진학했다. 아마 출산 이후부터는 커리어가 단절된 것으로 안다. 아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나이가 들다 보니 가까운 친구라도 남편의 직업, 직장의 근무환경 등 개인적인 여러 사정들은 묻지 않게 된 탓이리라.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혼자 짐작해보기는 한다.


 맥주를 마시며 아이도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일을 다시 시작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다니던 직장에서도 다시 오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아직은 다시 일을 시작할 계획은 없다고 하며 친구는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였던 친구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서랍장 위에 2-3천 원 정도의 용돈이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돈으로 남동생과 간식을 사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어느 날 다른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집에 계셨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한잔씩 주셨다고 한다. 친구는 어머님이 데워주시던 따뜻한 우유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았다고 했다. 자신도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오면 집에서 그렇게 따뜻한 간식을 직접 챙겨주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한 때 소녀였고, 대학생이었고, 커리어우먼이었던 우 그렇게 각자 나름의 기억과 추억을 안고 엄마가 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