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가 너 보다 더 커보여.
보통 그 반대가 맞지 않나?
친구와 카페에서 공부하기로 약속하고 만났던 날이었다.
가방에 들어가지 못해 서 내 손에 들려온 헝클어진 너저분한 시험지를 보고 친구는 어이없어했으면서 놀리기 바빴다.
나는 그 농담이 꼭 마치 시험지가 결국 날 잡아먹을 것 같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것은 전 날 인스타에 국어를 100점을 맞은 시험지를 스토리에 올렸던 걸 본 외국인 친구가 디엠으로 날 이해할 수가 없다는 메세지 때문일 수도 있다.
정확히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
교육청 모의고사를 봤다.
재학생들만 성적표가 나가는 시험이었는지라, 어버이날이 지난 다음 날이 되어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3월 모의고사에선 전과목 4등급이 목표였고,
이번 시험에선
전과목에서 3등급 이상을 받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수학을 제외하곤 달성해냈다.
영어와 물리학2 에선 2등급을 받았다.
나는 나 혼자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다.
사람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이 현상은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일종의 자아분열 같은 것이었다.
“국어에서 안정적으로 3등급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하필 독서지문에 초음파 문제가 나왔고, 방사선과를 졸업한 나는 그 긴 지문을 하나도 안읽고 2분만에 바로 풀어낼 특혜가 주어져서 그런거라고. 그리고 그 문제가 오답률이 높게 나왔고 나는 운이 좋았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차피 맞춘건 맞춘거고, 운이 좋은 것도 실력이지.
뭐 어쩔건데. 이렇게 풀었다고 날 찾아내서 틀렸다고 할 것도 아니고, 평소에 내가 실수해서 틀린 건 맞게 해주지도 않잖아.“
라면서 갑자기 관대해진다.
특히 물리학 2에서는 생각이 더 많아졌다.
모두가 뜯어말리던 과목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선택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하여.
내가 물리학 2를 선택했던 것은,
그러니까 일종의 학교에서 받은 괴로움을
나 혼자 찌질하게 하는 복수였다.
그러러면 나는 적어도, 이 공부는 합당해야했다.
학교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거, 내가 학교로부터 얻어온 것.
내가 적어도 감정을 버텨내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그 정말이지 괴로웠던 것을
어떻게든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라고 합당하게 만들 접근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물리학 2 에서 2등급을 얻어냈으니,
내가 그 버러지 같은 전문대를 졸업한 것은 타당한 행위가 되었다.
나는 나 혼자 웃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하면서 의심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 재수 생활에서 얻는 모든 긍정적인 것들에 대해 웃다가도
내가 찍어서 맞춘 문제들이 정녕 내 수준인가 의심했고, 동시에 ‘그것도 실력이야. 넌 잘해냈어. 목표를 이뤘잖아‘ 라고
내가 듣고 싶은 조언과 칭찬을 혼자 뇌까렸다.
흔히 누구나 내면의 천사와 악마가 있다는데 나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나 혼자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만들어냈다. 그래봤자 타인이 아니라 나였지만.
나는 외로웠고, 칭찬은 듣고 싶고.
웃긴건,
그러면서 혼자 두려움과 회의감을 느꼈다.
“조현병이 이런식으로 걸리게 되는건가? 혹시 나 환자가 되어가는 루트인가?” 하며.
난,
그렇게 사분할이 나버린 인간인 정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