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행복조각

by 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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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이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검색하는데 얼마 전 Nas의 정규앨범 1집이자 명반으로 꼽히는 'Illmatic'이 일본에서 30주년 기념으로 발매된 걸 알게 됐다. 당연히 CD로는 소장하고 있는 앨범이지만 카세트테이프로는 갖고 있지 않아 구매하려는 찰나 높은 가격에 손가락이 멈춰버렸다. 패닉 바이는 하지 않는 편이라 우선 위시리스트에 저장해 두고 이베이 앱을 닫았는데 이틀 후, 판매자에게 오퍼가 왔다. 내용을 보니 5% 할인된 금액을 제시한 거였다. 판매자의 성의를 고려해(라고 합리화하며) 페이팔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일주일 후 국제택배가 현관문 앞에 도착했단 메시지를 받았다. 평소 같으면 커터 칼을 가져와 지체 없이 박스를 개봉했겠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주 조금만, 그저 며칠만 이 상태로 박스를 두고 싶었다. 뭐랄까...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앨범을 다시 만난 설렘이 박스를 개봉하는 순간 소멸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3일만 이대로 내 방 한편에 두기로 했다. 그렇게 3일만 설렘을 더 안고 있기로 했다. 택배가 조금 늦게 오는 거라 생각하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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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만에 들린 바버샵. 의자에 앉아 팔걸이를 보니 익숙한 게 눈에 들어왔다. 툭! 손가락으로 구조물의 주변부를 건드려봤다. 뚜껑이 열렸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이런 게 있다니...' 어릴 때 차 안에서나 보던 간이용 재떨이. 사라진 것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자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아 어린 시절을 돌려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바버샵을 둘러보니 이게 뭔지도 모를 나이대의 손님들이 대다수였다. 연초보다 전자담배가 익숙할 그들이 이것의 용도를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흡연 인들에게 천국이었던 그 시절을 부러워할까? 혹은 신문물을 접했을 때와 비슷한 신기한 기분일까? 55년도 리바이스 501을 복각한 데님을 입고 있는 아저씨가, 재떨이가 달린 바버 체어에 앉아 엉뚱한 상상이나 하고 있단 걸 저들은 알까? 망상가는 재떨이 하나에도 심심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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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Index' 이곳을 서점이라 해야 할지, 카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확실한 건 언제나 영감이 떠오르는 애정하는 공간이란 거다. 진동벨이나 대기표 번호 대신 이 순간 내 이름을 대신하는 건 알파벳이었다. 그리고 아래에 적힌 단어 하나. 'new'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요즘 나의 새로움은 어떤 게 있었을까 생각해 봤다. 최근에 글쓰기를 함께 향유하는 모임에서 공저 주제로 '엄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게 떠올랐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야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엄마를 주제로 글을 쓴다는 건 처음이었다. 글을 쓰는 내내 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정돈하려 침을 크게 삼키고 가슴에서 올라오는 걸 꾹 눌러도 봤지만 끝내 몇 방울의 그것이 키보드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키보드에 각인 된 것은 투명한 걸로 적셔졌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엔 눈물 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담담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감정을 추스르며 쓰다 말기를 반복한 끝에 6시간이 걸려 초고를 마무리했다. 감정을 절제하며 글을 쓴다는 기분.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뭔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마음. 최근에 처음 느껴 본 새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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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요즘 나의 하늘엔 앙상한 나뭇가지와 전깃줄의 콜라보가 묘하게 멋져 보인다. 서울을 벗어나 신도시를 가면 전깃줄을 볼 수 없다. 도시가 계획되면서 전깃줄도 모두 땅으로 들어가도록 설계하기 때문인데 예전엔 그렇게 깔끔하게 정돈된 신도시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지만 몇 년 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새로운 것이 익숙함이 되어서 그런 걸까? 모든 것이 땅 아래로 들어가는 요즘, 전신주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이 오히려 멋있어 보인다. 전깃줄에 새가 앉아 있기라도 하면 마치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의 남쪽을 잘 가지 않게 됐다. 마치 신도시를 갈 때처럼 재미가 없어졌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서울의 북쪽은 아직도 옛것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 많다. 물론 이곳들도 언젠가는 재개발이 되어 용적률이 높은 건물로 가득 차겠지만 아직은 오래된 것의 정취와 온도를 즐길 수 있어 항상 새롭다. 부산을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했다.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도시. 내가 사랑하는 도시는 그런 모습인가 보다. 아직은 전깃줄이 걸린 하늘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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