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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

하와이에서 집구하기

by 만석맘 지은

“12월 초에는 들어가시는 거죠?”

유학원에서 당연한 듯 물었다. 연말이면 하와이에서 집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미리 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게 한 달 먼저 출국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남은 휴가를 모두 긁어모아 겨우 10일 가량 출국을 앞당겼다.


문제는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 유학원에서 제공하는 현지 정착 서비스가 있었지만 비쌌다. 직접 부동산 사이트를 뒤졌고, 괜찮아 보이는 광고 매물에 문의를 했다. 몇 주가 지나도록 한 통의 답신도 없었다.

출국이 코앞인데 집이 정해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정착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기대와 달리 시간만 지나갔다. 현지에서 며칠씩 연락이 두절되기도 하고 어쩌다 소개받은 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빠듯한 일정에 속만 타들어갔다. 결국 서비스는 포기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영화를 보고 게임을 했지만, 나와 신랑은 한숨만 나왔다. 하와이에 도착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를 불과 5일 앞둔 시점이었고, 민박집 숙박이 끝날 때까지 집을 구하지 못하면 비싼 호텔에서 지내야 했다. 최악의 경우 성수기라 호텔이 없으면 거리를 떠돌 수도 있었다. 집 주소가 있어야 아이들 학교 등록이 가능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정착해야 했다.


막막했던 첫날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덮쳤다. 미리 예약한 한인 민박집에서 짐을 풀고, 아이들을 잠시 쉬게 한 후 신랑과 머리를 맞댔다.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는 여전히 답이 없었지만 한국에서 검색해 놓았던 집들 중 몇 곳을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무작정 한 콘도에 도착했다.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우릴 반겼지만 연휴라 그런 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게시판에서 우연히 발견한 리얼터의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하루가 헛되이 흘러갔다.


뜻밖의 행운


"우리나라처럼 동네마다 부동산 사무실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 문득 한국에서 연락했던 한인 하와이 부동산 블로거가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블로그에 글을 달았다. 다행히 답장이 왔다. 하와이의 큰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서 다음 날 만나자고 했다.

다음 날, 우리는 부동산 회사에 들렀고 그분과 인사를 했다. 그분은 매매만 거래하므로 월세 전담하는 백인 리얼터를 연결시켰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집을 볼 수 있었다. 그 집은 전망이 훌륭했고, 학군도 괜찮았으며, 호텔 못지않은 야외 수영장까지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세탁기가 없어 공용 세탁실을 사용해야 했고, 리얼터가 휴가를 떠날 예정이라 계약 진행이 어려웠다. 게다가 하와이의 부동산 계약 절차는 한국과 달랐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입금하면 바로 입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입주 신청 후 범죄 기록과 재정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몇 주가 걸리는 과정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겹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기적처럼 찾아온 ‘우리 집’


신랑이 미국 전화번호로 직접 연락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아무런 답변이 없던 부동산 중개업자들과 집주인들이 하나둘 연락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와이에서는 이메일보다 직접 전화하는 것이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침내 우리가 정착한 곳은 한인 인터넷 카페에서 찾았다. 집주인이 직접 올린 매물이었고, 연락하자마자 바로 집을 볼 수 있었다.

집주인은 30년 전 이민을 온 한국인이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더욱 신뢰가 갔다. 부동산을 거치지 않는 직거래라 절차도 간단했다. 오래된 콘도였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필요한 가구와 가전이 모두 갖춰져 있어 당장 생활이 가능했다. 세탁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까지 있었고, 바닥도 카펫이 아닌 마루라서 아이들 키우기에 적합했다. 무엇보다 집주인과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증금을 건넨 후, 우리는 마침내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안정이 주는 위로


이삿짐을 정리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했다. 신랑이 스테이크를 굽느라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좋았다. 길거리에 나앉을 걱정이 끝났기 때문이다. 편안한 우리 집에서,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고 와인을 따르고 잔을 부딪쳤다.

집이 주는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친 몸을 누일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적 같은 순간. 그날 밤, 신랑과 맥주 한 캔을 나누며 감사함을 나누었다. 드디어, 우리의 하와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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