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운전면허증 받기, 끝없는 인내의 시간
“하... 하... 하...”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 나무늘보 캐릭터가 떠올랐다. 이름은 ‘플래시’. 아이러니하게도 ‘섬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웃는 속도조차 너무 느리다. 차량국(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 직원으로 등장하는 플래시는 말도 한 마디씩 천천히 하고, 업무 속도는 더 느리다. 주인공 주디가 다급한 상황에서 차량번호 조회를 위해 방문했을 때도, 플래시는 느릿느릿 일을 진행하며 답답함을 유발했다. DMV에 대한 풍자가 이렇게까지 적절할 수 있을까?
하와이에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 중 하나는 바로 DMV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일이었다. 2016년 8월 24일부터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별도의 시험 없이 하와이주 면허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처음 DMV에 방문한 날은 오전 11시경이었다. 오래 기다릴 각오로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한산했다. 안심하며 두리번거리는데 입구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오늘 접수는 마감되었습니다. 내일 다시 오시거나 예약을 하세요.”
직원은 입구 왼편에 있는 접수 기계를 가리켰다. 예약 가능 날짜를 확인해 보니 두 달 뒤였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어 다음 날 새벽부터 다시 도전했다.
아침 7시 20분. 도착하니 전날과 다른 분위기였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표를 보니 예상 접수시간은 8시 19분. ‘한 시간 정도면 되겠지.’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돌아왔는데, 번호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예약자가 우선이었고, 당일 접수자는 그 빈자리를 기다려야 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직원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운전면허증은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운전면허증으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신분증(ID)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신분증 기능이 포함된 운전면허증이 필요했는데 학생비자 시작일 이후에 발급 가능했다. 수업 시작일 이전에 입국해서 시스템에는 아직 내 비자 정보가 등록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다시 방문해야 했다.
수업 시작하는 첫날, 세 번째 방문. 이번엔 철저한 작전을 짰다. 남편이 먼저 가서 대기표를 받고, 나는 학교를 마치고 바로 합류했다. 드디어 해결될 줄 알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비자 시작일은 오늘이 맞지만 정보가 아직 시스템에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오세요.”
그렇게 또 시간을 보내고 네 번째 방문.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처리가 불가능했다. 학교 사무실에서 비자 정보를 입력해야 DMV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기가 시작했는데 아직 비자 정보 입력이 안 되다니. 다음날 학교 행정실을 찾아가 확인해 보니, 학생들의 반 배정과 이의 접수가 끝난 후에야 입력이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DMV를 다섯 번 방문해야 했다.
남편이 한국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 마지막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정말 성공해야만 했다. DMV에서 기다리는 동안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지만 다행히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드디어 임시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6주 뒤에 정식 플라스틱 면허증이 집으로 도착할 거예요. 고생하셨어요. 축하합니다.”
처음 만났던 직원이 나를 기억하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돌려받은 한국 운전면허증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 마음도 구멍이 난 것 같았지만 드디어 받았다.
미국 DMV 직원들이 정말 나무늘보처럼 느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문제는 시스템이었다. 업무량이 많고 절차가 복잡해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새삼 한국의 빠르고 정확한 행정 시스템이 감사했다.
이 경험을 통해 철저한 준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후부터 매사에 꼼꼼히 확인했다. 특히 예약 시스템을 활용하고, 필요한 서류를 미리 점검했다.
인내심도 필수였다. DMV에서의 대기는 단순한 행정 처리가 아니라 하나의 인내 시험과도 같았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현지 행정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이번 경험 덕분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한국으로 떠난 후, 잊을 만할 때쯤 플라스틱 면허증이 도착했다. 나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쓸쓸히 자축했다. ‘이까짓 거 하나 받으려고 그렇게 고생했나?’ 앞으로 하와이 생활에서 또 어떤 난관을 마주하게 될까? 하지만 하와이에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은 성공이 앞으로 도전에 대한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