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 그리운 아이들을 위한 엄마의 도전
세계 최고의 휴양지인 하와이. 이곳에는 맛있고 유명한 음식들이 넘쳐난다. 미국 대표 음식인 육즙 가득한 햄버거와 스테이크는 물론이고 샐러드 등을 한 접시에 얹어 먹는 플레이트, 그래비 소스 뿌린 햄버거 패티에 달걀 프라이를 얹은 로코모코, 참치 생살에 채소와 소스를 얹은 포케, 스팸으로 만든 따뜻한 무스비 등 하와이 대표 음식까지. 관광객이라면 하루 세끼 새로운 맛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하지만 여행자가 아닌 ‘거주민’의 입장이 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엄마, 나는 우리 동네에서 먹던 삼겹살이랑 김치볶음밥이 정말 먹고 싶어.”
“나는 짬뽕이 좋아!”
“엄마는 매운 족발이 너무 그리워.”
하와이에 와서 이렇게 빨리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 한식을 찾았다.
아이들은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했다. 햄버거, 피자, 치킨은 몇 번 먹고 나니 질려버렸다. 시리얼도 곧 쳐다보지 않았다. 빵을 좋아하던 둘째조차 “이제 빵 안 먹을래”라고 할 정도였다. 스테이크는 질기고, 일본 라멘은 너무 짜며, 튀긴 음식은 느끼하다고 투덜댔다.
안 그래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 텐데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이들은 라면과 김치, 스팸만 찾았다. 밥심이 필요했다.
하와이에 한인식당이 있긴 했다. 분식집, 고깃집, 중국집, 핫도그집 등 다양한 한식당이 있었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싼 칼국수 한 그릇이 10달러(한화 약 15,000원), 삼겹살 2인분과 된장찌개를 시켰더니 100달러가 나왔다. 게다가 여기에 15~20%의 팁까지 추가해야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외식으로 향수병을 달랠 수 있었지만, 자주 가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만들어도 아이들은 한두 숟가락 뜨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요리 연구가 필요했다.
처음 한식 요리를 제대로 해보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재료였다. 한국에서는 쉽게 살 수 있는 재료들이 하와이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한인 마트가 있긴 했지만 가격이 비쌌고, 코스트코에서는 싸고 원하는 부위를 구하기 힘들었다.
먼저 고기 부위 이름부터 검색하기 시작했다.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는 고기 중 한식 요리에 적합한 부위를 찾기 위해 영어 명칭을 외우고 비교해 보았다. 100% 같은 부위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부위라도 활용하면 익숙한 맛을 낼 수 있었다.
그러다 ‘망치(Mangchi)’라는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식 요리 유튜버였는데, 미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한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외국 사람들도 따라 할 수 있게 쉽게 요리했다. 김치찌개, 불고기, 스테이크, 심지어 족발까지 만드는 영상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가 오면서 더 많은 유튜버들이 외국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한식 레시피를 공유했다. 나처럼 외국에 있는 구독자에게 “해외에 있는 우리 팀원분들”도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를 알려주는 백종원 씨를 비롯해 수많은 요리 선생님이 생겼다.
탕수육, 짬뽕, 짜장면, 치즈 불닭, 허니버터 치킨, 매운 돈가스, 꽈배기 도넛, 마라탕! 배달로만 시켜 먹던 요리였는데. 못 만들 요리가 없고 실력도 늘었다. 식탁이 풍요로웠고 향수병도 잦아들었다.
한식을 꾸준히 만들어 먹이니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들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처음에는 밥을 먹지 않아 마르고 기운이 없던 아이들이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키도 눈에 띄게 자랐다. 신랑이 사진을 보고 “애들이 갑자기 왜 이렇게 컸어?”라며 놀랄 정도였다.
음식을 통해 얻은 변화는 단순히 건강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바쁜 일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간단한 요리로 대충 해결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하와이에서 직접 요리를 하면서, 집밥이 아이들에게 주는 안정감과 행복을 실감했다.
이제는 요리를 하는 시간이 즐겁다. 아이들도 요리를 도와주며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오늘은 뭐 해줄 거야?”라고 기대하며 묻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밥을 해주는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더 이상 ‘요리를 잘 못하는 엄마’가 아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고, 요리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음식으로 가족이 행복해지는 순간이 많아졌다.
우리 가족의 하와이 생활은 음식으로 인해 더욱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독립하더라도, “엄마 밥이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기를.
그때가 되면 기쁜 마음으로 따뜻한 집밥을 준비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