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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ppy Mar 29. 2021

오늘도 그들은 어김없이 새벽종을 울린다.

'평대리 마을'







동쪽에 작지만 강인한 마을이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넓고 평평한 곳이라 하여 ‘뱅디’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평대리 마을이다. 억척스럽지만 정 많은 마을 주민들은 새벽부터 그들의 일터로 향해 분주한 움직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물질을 하러 나가는 해녀들은 해녀복과 테왁을, 밭일을 나가는 주민들은 곡괭이와 모자를 챙겨 저마다의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특히나 이곳은 명실상부한 당근의 주산지로서 12월이 되면 당근을 수확하는 움직임으로 마을이 쉴 틈 없이 돌아간다.







평대 초등학교를 시작점으로 바닷가를 향해 걷다 보면 옹기종기 모인 돌담길이 이어져 있다. 꽤나 길게 이어진 이 길을 걷다 보면 돌담 너머로 넓게 퍼진 흙에 빗질하듯 낸 고랑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유난히 검은색 빛을 띠고 있다. 이는 한라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내려앉은 화산회토인데, 작물이 잘 자라기엔 힘들지만 물이 잘 빠져 당근 농사를 하기에는 좋은 특징이 있다. 척박한 땅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은 그들 만의 방식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이 마을터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러한 척박한 땅 속에서도 분명히 오아시스는 존재했다. 이곳에서 나오는 물은 그 맛이 좋다 하여 ‘감수’라 불리며 이웃 동네에서도 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마을에 문화가 깃든 감수를 기억하고자 마을 한편에 수덕비를 세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동네의 밭담길에 붙은 명칭 또한 ‘감수굴밭담길’로 불리는 것을 보면 이 마을에서의 물의 의미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삶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삶에 흔적은 바닷가로 향할수록 더욱 그 색이 짙어진다. 평대리 해수욕장을 여유롭게 걷다가 동쪽으로 조금만 더 걷다 보면 ‘도깨동산’ 이라는 작은 푯말과 함께 정자가 하나 위치하고 있다. 정자 안에는 낡고 낡은 작은 의자가 바다 방향을 향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아마도 고된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해녀의 것일 수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의 것일 수도 있다. 정자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직사각형 모양의 신비로운 터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고된 물질로 꽁꽁 얼어버린 몸을 잠시라도 녹이고자 해녀들이 사용했던 ‘불턱’이라는 공간이다. 이곳은 어린 해녀가 선배 해녀에게 교육을 받거나 물질 전에 옷을 갈아입는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현대화로 인해 그 터만 보존이 되고 있지만 점점 줄어드는 해녀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자 하는 평대리 주민들의 노력이 담긴 소중한 장소이다.







거친 바다와 엉켜가며 오랜 시간을 자연과 나란히 걸어온 이 길 끝에는, 이제는 희미하게 그 형태만 남은 옛날 등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곳 주민들은 소박하지만 강인하게 그들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었다.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삶을 향해 뛰어드는 그 용기와 인내는 지금까지도 이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연하게 이 동네에 한 번쯤 방문하게 된다면, 당근을 파종하는 농부와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을 향해 짧지만 담백한 손인사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by. choppy

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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