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한담

쓰다 보니 (1)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by 집사 김과장


"사람들 발에 차여가며 우루무치 야시장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지들을 보니 혼란스러웠다. 왜 난 행복해도 되고 저들은 그렇지 못한가?"


교정지를 받았다.

위 문장에 대한 의견이 첨부돼 있었다.


"행복의 잣대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임. 삭제하는 게 어떨까 싶다"


편집자는 넘어간 부분을 교열 담당자가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긁혔다.'


"앞뒤 문장은 읽은 건가? 당시 사건 진행 과정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서술한 부분에 대해 자신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연 교열작가의 역할이 맞나?"


이번 책은 에세이다.

개인의 생각과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적는 자유로운 산문이다.

거기에 교열작가 본인의 도덕적 판단 기준을 들이댔다.

'지극히'라는 표현도 거슬렸다.

교열 담당자는 작업 내내 신경질적인 표현을 썼다.

교정지에는 개인적인 메모가 낙서처럼 적혀 있기도 했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꼼꼼히 보지 않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런 순간이 쌓여 교정지 검토를 마쳤을 때는 결국 상당히 언짢은 기분이 됐다.

교열 담당자가 무례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교열작가는 단순히 자기 생각을 표현한 것뿐일 수도 있다.

나도 데스크를 보면서 경험했기에 본인 기준에 미흡한 글, 본인의 의견과 다른 글을 억지로 읽고 수정해야 하는 교열의 고충은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이 무례한 표현을 용인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적어도 이전에 함께 일한 교열 담당자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저자의 의견을 구했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면, 교열 담당자의 의견이 타당한 측면도 있다.

저 문장만 보면 나는 행복의 기준을 물질, 금전으로 구분한 게 맞다.

이는 내가 평소 생각하는 바와도 다를뿐더러, 책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과도 배치된다.

내가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행 경험을 통한 자아 성찰과 성장'이다.

그 과정에서 물질적인 요소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한 문장으로 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저 글을 수정해야 할까?


수정한다면 나는 사건 당시의 자아를 글을 쓰는 시점의 자아로 덮어쓰게 된다.

당시 경험을 통해 내 가치관이 변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자아모순을 피하고, 나의 잘못된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 부연 설명을 덧붙이면 글이 장황해진다.

따라서 이 또한 좋은 방법은 아니다.


결국 나는 이 부분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싣기로 했다.

독자에 따라서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누군가는 작가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있다.

다만 독자가 문장 하나에 담긴 의미보다 책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 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오히려 반성할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해야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교열 담당자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다.

그분 또한 부족한 내 글 읽느라 고생이 많았겠지.


... 아프게 하나 배웠다.



000015.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