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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한담

노이로제

사제도 사람이다.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by 집사 김과장



꿈속에서 나는 미사 참례 중이었다.

미사 시작 10분 전, 전례 담당이 펑크 났다.

왜 그랬을까?

난 주송자에게 내가 1, 2 독서를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한 것 같다.

미사는 시작됐고, 난 아무 준비도 않은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

1독서 순서가 되자 난 마이크를 들고 앉은자리에서 성경을 읽었다.

2독서 순서가 되자 나는 옆에 있던 누군가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그는 당황했고,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독서가 중단되는 사고가 났다.

제대에 있던 신부님은 미사를 멈추고 청년들을 ‘집합’시켰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당시 신부님은 여전히 생각난다.




난 주일학교 교사회에 17년 간 몸담았다.

청년부 지도 사제인 보좌신부 임기가 2년이니, 적지 않은 지도 사제를 만났다.

내가 단체장이던 시기에 만났던 지도 사제는 독선적인 완벽주의자였다.

행정에 있어서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면을 보였다.

신앙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지도 사제는 모든 주도권은 당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본인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 청년에게는 불같은 분노를 표했다.

이해나 설득은 없었다.

상대가 완벽하게 굴복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한 그는 철저하게 배제됐다.


본당 단체의 주먹구구식 행정에 체계를 세우고, 시스템을 정비한 점은 공(功)이었다.

하지만 독선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에 많은 사람이 감정을 다친 결과는 과(過)였다.

많은 청년이 본당을 떠났다.

내가 속한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대책이 필요했다.


당시 단체장이었던 나는 나를 죽였다.

험한 꼴은 내가 볼 테니 교사들은 현재 직분에만 충실하라 일렀다.

나는 사고와 행동 기준을 지도 사제와 교사들 간의 원활한 관계에 맞췄다.

지도 사제의 분노, 질책이 평교사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교사회의 움직임을 언제나 사전 - 진행 - 사후로 구분해 각 단계에서 지도사제와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했다.

나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이 실수하면 먼저 보고하고 용서를 구했고, 대안을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모든 일의 진행상황은 지도사제가 귀찮아할 정도로 꼼꼼하게 보고했다.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우리 단체는 본당에서 유일하게 지도사제와 마찰이 없는 단체였고, 난 인정받는 중간관리자였다.


다만 문제는 이를 경험한 곳이 교회라는 사실이었다.

사랑을 기반으로 구성원들의 조화를 지향해야 할 교회 공동체에서, 당시의 난 효율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모든 상황은 ‘팀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포장한 채 스스로의 감정을 기만하고 있었다.

항상 ‘신부님이 터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사제의 일거수일투족에 바짝 긴장한 채 지냈다.

즐겁지 않아도 웃어야 했고, 찬성할 수 없는 의견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척했다.


문제는 서서히 나타났다.

꿈속에서도 지도사제를 만났다.

나는 수시로 가위에 눌렸다.

나의 자아는 철저하게 짓밟혔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었다.

그로 인해 당시 함께 했던 어린 교사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래로 풀었던 탓이다.

당시의 상황을 온전히 감내하기엔 난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다.

내 실수고 잘못이었다.

내 정신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교회에 ‘투신’한 부작용이었다.



20년이 지난 어느 날,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던 그때 기억이 비집고 나왔다.

나이가 들어 당시의 기억이 희미해진 탓일까?

그때를 떠올리는 게 그렇게 고통스럽지만은 않다.

어쩌면 방어기제가 작동해 고통은 억누르고 추억이 더 부각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속한 곳은 교회였다.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신자라면 그 길의 길잡이가 되는 사제를 존경하고 따르는 게 마땅하다.


내가 만났던 다른 어떤 사제는 본인의 인간적 결함을 정당화했다.

"사제도 인간이야. 너희들이 이해해 줘야지."

사목활동 중 비져나오는 부조리를 신자들에게 이해하라고 강요했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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