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공원
시건방이 넘쳐흐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혹시나 해서 손을 내밀었더니 매몰차게 손등을 때린다.
가볍게 콧김을 한번 내뿜은 놈은 양지바른 곳을 찾아 똬리를 틀었다.
내가 낮잠을 방해했나 보다.
가을 오후, 그림자가 자라기 시작한 시간대의 낙산공원은 고양이 천국이다.
따뜻한 햇살 아래 널브러져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긴다.
까맣고 노란 얼룩무늬 한 마리가 사람이 다니는 큰길 한가운데 늘어져 있었다.
새까만 놈 하나가 그 옆에서 보초를 섰다.
호랑이 무늬를 한 녀석은 길가에 앉아 연신 하품하며 행인을 구경했다.
어느 한 놈 청하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녀석들 근처로 모여들었다.
소녀들 호들갑과 청년들 낄낄거리는 소리 속에서도 놈들은 나른했고, 태연했다.
이런 관심쯤 예사로운 듯 보였다.
간혹 귀찮아 자리를 뜨는 녀석도 있었다.
내 손을 때린 녀석은 다른 남자에게도 ‘하악질’을 날려대고 있었다.
사람과 고양이의 관계는, 슬프게도 일방적이다.
도도한 자태와 치명적인 애교에 넋이 나간 인간은 기꺼이 간과 쓸개를 다 빼 준다.
하지만 고양이는 자기가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는다.
새끼 때 잠시라도 내가 안 보이면 불안해 울던 ‘검지’는, 이제 밥이 필요하거나 외출하고 싶을 때만 나를 부른다.
회사 건물 뒷마당에서 캐스팅해 집으로 모셔 온 ‘캔디맨’은 빗질이 필요할 때만 내 곁에 앉는다.
길고양이 시절에는 나 없이는 못 살 것 같이 굴던 놈이, 등 따시고 배부르니 이제는 나를 하인 취급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가슴으로 낳았으면 지갑으로 키워야 하는 게 고양이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고 쇼핑몰 장바구니에 장난감을 주워 담는다.
오와 열을 맞춰 놓은 화분을 도미노 취급하는 놈에게 ‘아, 미안. 네가 이걸 넘어뜨릴 거라 예상 못 한 내 잘못이야’라며 새 화분을 주문한다.
방바닥을 같이 기어다니며 어떻게든 눈을 맞추려는 자신을 발견하면 자괴감이 든다.
그래도 또 박박 긴다.
이건 분명히 고양이의 마법이다.
혹은 사술이거나.
그래서 고양이는 요물이다.
가끔 화가 나는 건, 이 녀석들이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출력해 놓은 논문 초고 절반을 검지가 찢어발긴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소리를 버럭 질렀더니, 녀석은 순식간에 태세 전환하고 내 옆에 붙어 애교를 부려댔다.
주먹을 불끈 쥐다가도 물기 머금은 눈망울을 굴리며 가늘게 우는 놈을 보니 스르르 힘이 풀렸다.
그리고 녀석은 그날 저녁, 기어코 남은 절반마저 찢어 놓았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제일 예뻤던 짝꿍은 내게 통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어쩌다가 생긋 웃어 보이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미소 한 번에 서럽던 시간은 깨끗하게 잊혔다.
고양이를 대하는 나도 그렇다.
대단히 불공평한 관계다.
아내는 “나한테나 좀 그렇게 해보지”라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아내는 고양이가 아니니까.
낙산공원에서 이화마을을 질러 동대문으로 내려가는 길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사람 좋아하기로 유명한 페르시안 품종이었다.
지나는 사람마다 머리를 쓰다듬는 통에 귀찮았는지, 내가 다가가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살살 꼬드겨서 턱을 긁어주니 이내 갸르릉 목을 울리는 소리를 낸다.
그 정도만 반응을 보여줘도 헤벌쭉 웃게 된다.
머저리가 따로 없다.
한참 고양이를 놀리고 있을 때 훤칠하게 예쁘장한 외국인 아가씨가 다가왔다.
아가씨가 꺄르르 웃으며 부르자, 놈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가 아가씨 다리에 머리를 비벼댔다.
괜찮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잠시나마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듣고 행복했으니, 그거면 됐다.
다음에 낙산을 찾을 때는 고양이 간식이라도 싸들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