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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디 Nov 17. 2024

싫지 않으니까 좋아하면 안 될까

내게 취향은 운명이 아닌 선택

옷 고르는 건 너무 어렵다. 나는 나답게 잘 입는 법을 몰라서 늘 무난하게 입는 사람밖에 못한다. 무난하게 단정하거나, 무난하게 편하거나. 나는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무난함이 내 스타일이라고 소개하는 게 어쩐지 부끄럽다.


간혹 누구랑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게 되면 좋아하는 음식보다 지금 뭐가 안 땡기는지 말하는 게 더 편하다. 언제든 "너무 느끼한 거 빼고요"라고만 말하면 되니까. 주변엔 나 빼고 다 미식가들인 것 같다. 다들 어디서 그렇게 잘 먹고 다니길래 좋아하는 음식이 그렇게나 빨리 생각나는 걸까?


나도 옷 찰떡으로 예쁘게 입고 싶고 맛잘알도 되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일들만으로 내 두루뭉술한 취향이 아쉬워지거나 하진 않는다. 애초 옷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음식이야 뭐든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내가 늘 무언가를 소개하고 설득하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요즘 사회는 얕고 넓게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진하고 확고한 취향에 높은 값을 쳐준다. 물론 관심경제에서 좁고 확실하게 좋아하는 티를 내는 사람이 주목받는 건 자연스럽다. 취향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급하게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말하더라. 취향이 확고한 사람의 강점은 그 분야에 이미 천착해 있어서 누구보다 빠르게 전문화할 수 있다는 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고, 부르디외에 따르면 '습관(아비투스)'이다. 말하자면 어딘가를 습관처럼 향하는 마음이라는 거지. 취향이 진한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갈 곳을 몰라서 여태 헤매는 사람 같기도 하다. 대신 나에겐 다른 강점이 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급히 하는 공부'라는 거, 사실 나는 좋아한다. 때로는 이미 좋아하던 걸 디깅하는 일보다 모르는 걸 공부하는 게 더 재밌다. 요 근래 나는 생전 쳐다도 안 보던 애니메이션을 여럿 보고 있다. 지난 2년 사이에 자주 듣는 음악의 장르가 달라졌고, 예전에는 지루해서 끝까지 못 듣던 곡들을 이제는 찾아 듣기도 한다. 스타일이 어떻든 느낌만 좋으면 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패션이든 음식이든, 뭐든.


내게 취향은 그저 싫어하는 것들의 여집합일 수도 있다. 싫지 않으니까 좋아한다고 말하면 매력 없다는데, 어쩌나. 그나마 별로 안 좋아하던 것들도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 예정이다. 가던 길에서 옆으로 조금만 새면 재밌는 것들이 계속 나온다는 걸 아는데, 안 가볼 수야 없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설득적이다.

대체 불가한 기획자로 성장하는 에세이 프로젝트, 오디세이

https://www.instagram.com/ody.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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