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님
"퇴행성 질환으로 스물다섯에 절명한 청년 마츠에게는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모르던 비밀이 있었다. 외롭고 우울했던 마츠는 "이벨린"으로 변모해 매일 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에 접속해 길드원들과 투닥이고, 여성 게임 유저와 밀당하고, 힘들어하는 친구의 고민 상담을 들어주었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려 한 청년의 치열했던 생애를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복기한다."
(박가언,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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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 스틴. 듀켄씨근 이영양증이라는 근육 퇴행 질환을 갖고 태어난 아이. 걷고, 뛰고, 친구와 몰려다니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가 없던 아이에게 부모는 게임을 선물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점점 게임에만 몰두하는 듯했고, 겨우 스물 다섯이 되어 아이는 영영 떠났다. 자신들이 준 병 때문에 아들이 한평생 사랑에 빠지지도, 친구를 사귀지도,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지도 못한다는 것, 그것이 부모를 많이 슬프게 했다.
마츠가 떠나고, 부모는 아들이 활동하던 온라인 세상 속 사람들에게 부고를 내고자 했다. 자식이 쓰던 블로그에 접속해 소식을 알리고 의례적으로 이메일 주소를 남긴 부모는, 이내 쏟아지는 답신들과 아이가 직접 쓴 블로그 글을 통해 그동안 전혀 몰랐던 아들 "이벨린"을 알게 됐다.
"마츠는 제게 진정한 친구였어요." "이벨린은 로맨틱한 사람이었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습니다." "항상 분위기를 띄우곤 했어요." "가족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움츠러드는 육체에 갇힌 마츠는 활동의 제약과 자기혐오의 방해가 없는 게임 속에서 자유를 찾았다. 노르웨이의 듀켄씨 환자 “마츠 스틴”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에선 아제로스의 탐정 “이벨린 레드무어”가 된다. 마츠 “이벨린” 스틴, 그는 죽기 전에 타인과 우정을 나누었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로했으며, 정말로 사랑에 빠졌다. 모두 아제로스에서 생긴 일이다.
가족들이 영영 모르고 묻힐 뻔했던 그 삶은 게임 로그와 이메일, 블로그, 그리고 인게임 그래픽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흔히 농담으로 ‘지금 이 순간은 내 장례식에서도 영상으로 틀어 달라’고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그러한 기능을 해내는 영상 기록이다. 떠난 사람을 추억할 단서. 그의 가장 중요한 모습들을 머릿속에 남기는 기억의 편집.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일종의 추도문이다.
이토록 선명한 추억
그는 죽기 전까지 약 20,000시간을 와우에서 보냈고,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그런 이벨린의 삶을 특별한 방식으로 기록했다.
이 다큐의 원제는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말마따나 이벨린의 삶은 이제 누구라도 주목할 만한 것이 되었다. 그의 모든 말과 행적이 42,000쪽에 달하는 게임 로그로 기록되어 있었던 덕분에 그의 삶은 아주 실감나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이 재연을 위해 실제 게임에는 없었을 극적인 장면들이 추가되었고, 아바타의 표정은 더욱 풍부해졌으며, 그와 가장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배우가 세세한 독백들을 몸소 연기했다. 이벨린의 삶은 이토록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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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이벨린은 한국어 제목과 달리 지극히 평범했다. 게임 플레이가 특별하지도 않았고, 여러 관계 속에서 보여준 모습이 인상적이긴 했으나 비범한 위인의 행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때때로 위대했던 순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의 삶을 비범하다고 번역한 것은 현실 세계의 그에게 평범함이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도 외면할 수 없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나는 이벨린과 마츠 스틴의 관계에 대해 글을 쓰기가 거북했다. 어떻게 써도 결국에는, "마츠 스틴이 현실에서 고통받았다"라고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벨린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공개하기 전, 다큐의 전반부에는 실제 마츠 스틴을 찍은 홈비디오가 쭉 나온다. 마츠의 삶만큼 짧은 저화질 비디오에는 이것을 이후에 등장할 고화질의 애니메이션과 강렬하게 대비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벨린의 평범한 인생이 각고의 노력으로 선명해질수록, 마츠 스틴이 겪은 고통의 채도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선명한 애니메이션에는 제작진이 적극적으로 통제한 티가 나는 극적 연출들이 꽤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러한 재연이 다소 거짓된 것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벨린이 마츠 스틴의 삶을 진정으로 대변하지는 못한다는 의미로. 또 ⟨레디 플레이어 원⟩에 나오는 가상현실 게임 개발자 할러데이를 인용하며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 유일하게 중요한 건 현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이 ‘진짜처럼’ 연출한 이벨린의 삶은 마츠 스틴의 삶이라고 말하기엔 과장되고 허망한 것인가? 나는 잠깐이나마 이것을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이걸 따지는 데에는 게임이니 시뮬라크르니 하는 것까지 논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뇌가 사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정도 연출과 살 붙이기는 별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 저마다 간직하고자 하는 장면으로 기억을 각색하고 편집하지 않던가. 다큐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벨린의 삶은 그저 마츠 스틴의 삶에 대한 조금 더 선명한 추억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선명히 추억한다면 그 삶은 자연히 remarkable한 것이 된다는 것을,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증명하듯 보여주고 있다.
떠난 사람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은 남은 이들의 몫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되도록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추모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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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을 보면서, 나는 얼마 전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들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거행했던 맥고나걸 교수님(매기 스미스)의 추도식을 떠올렸다. 지팡이를 들고 하늘로 빛을 쏘아 올려 어둠을 몰아내는 의식. 혼혈왕자의 명장면이다.
또 칠곡군의 할머니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가 멤버의 장례식에서 랩으로 추모 공연을 했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서무석 할머니는 9개월 동안 암 투병을 숨기고 활동하셨다고 한다. 투병 사실을 알리면 더이상 활동을 못하게 할 거라고 생각해서.
누군가는 이런 기획을 재미있게 보겠지만, 누구는 그 재미를 주책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결국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원래도 삶은 주책없이 재밌다.
쉽진 않겠지만, 사는 동안 재미있길 바란다. 그러면 누군가가 우리와 함께한 시간을 선명하게 기억해줄 테니까.
오디세이 관찰자 시점: 떠난 너를 기억하는 특별한 방법
✍디디
다큐멘터리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을 보고 추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기획한다면, 무엇을 준비해두고 싶으신가요?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댓글로 나눠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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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시점"은 문화 텍스트나 사회 현상 속에서 각자의 관점으로 발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