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고 성장하는 영혼에게
바닷가재는 늙지 않는다. 노화 없는 성장. 언뜻 보기에는 이상적인 생애 같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갑각류인 바닷가재는 딱딱한 껍질 안에 살지만 유약한 속살을 가졌다. 몸집이 커지면서 껍질 크기가 같이 커질 리 만무하므로 때가 되면 탈피를 해야 한다. 견고한 외피를 벗어던지고 무방비 상태의 무른 속살로 바깥세상에 내던져진 순간, 세균이나 오염 같은 외부 환경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탈피를 감행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껍질이 다시 조여오기 때문이다. 위기에 봉착하는 것은 바닷가재의 숙명이다.
어제 수화기 너머로 할머니는 무탈한 일상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셨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이 지겨워서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는 거라면 그냥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어."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나님이 '매일 새 생명을 주는데 불평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겠네요." 우리는 서로 웃다가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평소처럼 대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걱정 대신 응원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할머니에게 탈피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할머니는 늘 불편함을 선택하셨다. 가끔은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사실까 싶을 정도로 사서 고생을 하는 타입이었다. 새로운 환경, 처음 보는 사람, 모르는 것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셨다. 좋은 거 아닌가. 긍정해버리기에는 자주 괴로워하셨다. 스스로 만든 껍질 속에 갇혀서 답답해하다가 고통을 견디고 탈피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은 할머니의 숙명이다. 우리 할머니에게는 노화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할머니, 여전히 그녀의 영혼은 늙지 않고 성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