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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Nov 08. 2021

오만과 편견

  모든 것이 어색한 이국 생활에 적응하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특히 짧은 언어 실력으로 인한 오해와 그로 인해 빚어지는 불협화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생겨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언어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어 열심을 내도록 해주지만 가끔은 터무니없는 상황에 빠져 억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언어가 부족한 것이 결코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는 근거가 될 수 없는데 마치 내가 지적 장애인이라도 된 듯 함부로 대하고 속이는 일들이 있을 때면 가끔은 화가 난다.  그렇다고 화를 내기엔 안 그래도 부족한 언어 실력에 오히려 오해만 더욱 불러일으키기 쉬우니 그저 입 다물고 있는 편이 아무래도 낫다 싶어 모른 척 지나친다.   

  

  대학과 대학원을 두 번씩이나 다녔고, 50년 넘는 시간동안 산전수전에 공중전과 해외파병까지 섭렵한 내가 안 해본 것이라고는 우주전 정도뿐이니 어디 가더라도 적응하고 능력을 발휘하기엔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내가 언어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나이 오십이 넘으니 언어 습득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  정말 몇 년만 젊었어도...     


  답답한 마음에 이런 저런 생각이 이어지니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나는 다른 누군가를 향해 그런 적은 없었던가 기억을 더듬다보니 아뿔싸,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버렸다.  수많은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체형이 왜소하다 해서 말이 좀 어눌하다 해서 바보 취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했던 기억들.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고 또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가로챘던 기억들 뒤로 그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흠집을 내었고, 키가 작거나 육체적 힘이 약한 이들을 스스럼없이 대한다는 명분으로 과한 농담들 너머에 나의 오만함이 숨어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격적인 대접을 해주기보다는 하기 싫거나 힘들고 지저분한 일들을 그들에게 모두 떠넘기고는 한국인들끼리 커피 한 잔 마시며 웃고 떠들던 기억들은 온 몸이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울 뿐이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들을 아무리 눌러보려 해도 솟구치는 힘을 억누를 수 없었다.  내가 이 정도 밖에는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     


  누구에게나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채 한쪽으로 치우쳐 생각하는 편견이 있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정의하고, 그에 어긋나면 불편함과 불쾌함에 사로잡힌다.  나보다 약해 보이는 이들에게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지독한 오만, 나보다 못사는 이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나라는 지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편견들이 나에게도 가득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금 부끄러움도 함께 깨닫게 된다.  혹 다른 이들이 나를 그렇게 대할까 두려운 마음에 먼저 그리 했던 것은 아닐까?  나의 부족함을 숨기려고, 나의 약함을 숨기려고 나보다 부족한 이들을 나보다 약한 이들을 공격함으로 난 강하다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내가 다른 이들을 돕는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일 뿐이지만 이제 와 다른 길을 찾기도 마땅치 않으니 난감할 뿐이다.  다행이라면 내가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마침 내가 가지고 있어 나눌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존경과 찬사를 보낼 때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집에서 혼자 미소 짓는 내 모습에 더 큰 만족과 우월감을 만끽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다.  부끄러움을 배우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게 된 이 시점에 참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한 것들이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모르던 바는 아니었지만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니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다행이다.    화끈거리는 내 낯이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남미의 강렬한 햇살 탓이라 둘러댈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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