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내드립니다
내일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2021년 11월 29일.
메신저를 통해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순간 호흡이 가빠지더니 이내 극심한 고통에 빠져들었다. 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에 마음 아팠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던 것도 아니었다. 타국에 있어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고통스러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남들처럼 어머니와 많은 정을 쌓거나 아름다운 추억들을 공유하지 못한 채 외롭게 자란 탓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따위의 감정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아팠다. 정신을 차릴 수 조차 없을 만큼 아프고 또 아팠다. 너무 아파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땅바닥 누워 이리저리 뒹굴며 몸부림치는 내 모습이 오히려 생소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아프게 했는지 모르겠다. 마음을 다스리고자 써오던 글조차 더 이상 쓸 수 없었고 아내의 위로조차 거부했다. 아이들의 얼굴은커녕 목소리조차 듣기 고통스러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미친 듯이 뒹굴고 또 뒹굴었다.
내 삶의 시간들 가운데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은 그저 단편이라 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순간들뿐이었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주변의 어른들이 어머니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기 느금마 있다'라는 소리에 겨우 걸음마를 익히고 있던 나는 사진 속의 어머니와 사진 밖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대신 느금마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을 만큼 나와 어머니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형성되어야 했던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은 외할머니와 손주 간의 정으로 대신 느끼며 살아왔다. 부모에게서 마땅히 받았어야 할 사랑이 외할머니의 사랑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내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나마도 해외로 나가려는 나의 계획으로 인해 서너 해에 불과한 시간이 전부였고 그간 혼자 생활해 오던 탓에 어머니의 생활 습관에 적응하기 어려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천륜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아니면 어머니의 사랑이 고팠는지 무뚝뚝한 내가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려 애썼던 기억들이 제법 있기는 하다. 특히 늦은 결혼 후 80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의 품에 손주를 안겨드리면서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이 제법 정 깊은 시간들이었음을 이제 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내 무심함에 아쉬움만 남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결코 해서는 안될 크나큰 잘못을 하셨다. 당시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겨버린 지금도 결코 이해할 수 없고 묻어두기에도 역부족인 그런 잘못을. 어머니의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당신의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왜 그러셨냐고 소리라도 한번 질러보고 싶었다. 내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격한 감정이 다소 사그라질만한 적당한 기회가 생길 때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는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못내 아쉽고 사무친다.
깊이 아주 깊이 묻어둔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와의 풀지 못한 감정이 상처가 되어 어느새 나의 삶을 쥐고 흔들고 있었음을 지난 연말에 되어서야 어슴프레 알게 되었다. 그전에도 그런 낌새를 느끼기는 했지만 무시하고 지나갈 만큼 대수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작은 아들 녀석이랑 뭔가를 하고 있었던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 옆에서 놀던 강아지가 자꾸만 나의 심기를 건들기에 가볍게 발로 걷어찼다. 그런데 내 발길질이 빗나가버렸다.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잔인하게 발로 밟아버렸다. 단 한 번의 발길질이었지만 강아지는 죽는다고 소리 지르며 도망가 버렸고 작은 아들놈은 그런 내 모습에 충격을 받고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분노에 휩싸여 말리던 아들에게도 소리를 지르던 내 모습에 스스로도 놀란 건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왜 분노에 휩싸였는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바로 전날이 어머니의 기일이었던 것. 지난해에는 타지에서 혼자 지내던 터라 밖으로 표출할 기회가 없어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나 자신도 모르고 지나갔었던 것이다. 내 안에 담겨있던 감정의 쓰레기들이 손 쓸 틈도 없이 쏟아져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에 그대로 퍼부어졌으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동안 심리학에 대해 빠져 있던 나였지만 케케묵은 상처들을 굳이 끄집어내어 치료해야 한다는 것에는 적극적인 동의를 하지 못했었다. 심리학, 특히 상담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이상적인 인간의 내면 상태란 온실 속의 화초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온실 속의 화초, 보기에는 생채기 하나 없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겠지만 우리는 결코 온실에서만 살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이라는 온실 밖에 내몰린 채 수많은 군상들과 부대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인지 내 안에 상처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이들을 향해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알면서도 굳이 외면해 온 것을 이제야 힘들게 고개를 끄덕여 마지못한 인정을 해본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끄집어내기도 전에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상처를 생각만 해도 밀려오는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나를 압도해 왔기에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버린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고개를 돌려 외면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외면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으니 이제라도 대면해야겠지. 아니, 대면해야만 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것들을 치워버려야만 한다.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언제까지 도망만 칠 것인가. 이대로 도망쳐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거야 하는 소리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내일은 또 새로운 내일의 해가 뜰 텐데.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 지나면 마법의 세계처럼 신비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 텐데. 해보자. 지금까지 외면하고 도망만 쳤으니 이제는 방법을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그 첫걸음으로 이제야 어머니를 나의 마음에서 떠나보내려 한다. 해결의 방안도 없으면서 해결의 의지도 없으면서 내내 붙잡고 있었던 나를 위로해 본다. 어두운 곳에서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어린 나의 등을 토닥이며 격려해 본다. 더 이상 어린 나를 보지 않고, 더 이상 흉측한 상처를 보지 않고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자고 말을 건네 본다.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껏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니 힘내보자고.
"많이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이제 괜찮을 거야. 너에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들이 지금 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어. 그들이 지금 너의 입에서 나올 말들을 기다리며 귀를 종끗 세우고 있어. 그들에게 너는 힘이야. 그들에게 너는 희망이야. 그들에게 너는 전부야."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