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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김 Aug 07. 2020

30년 된 습관 - 일기 쓰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변화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게 일기 쓰기 습관이 조금씩 자리잡기 시작한 게. 당시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셨고 선생님께서 내 일기장에 색 볼펜으로 comment를 적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지금이 사춘기인 것 같다고 적었고, 선생님은 내 마음을 헤아리는 말씀을 적어주셨었다. 30년 전의 일인데도 아직 아련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말보다 글에서 풍기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훨씬 더 오래 여운으로 남는 것 같다.
 
나의 일기 쓰기는 학창 시절을 지나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출산 직후 일과 육아로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몇 년을 제외하고 말이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고 해야 할지, 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릴까 봐 불안하다고 해야 할지, 그 날 있었던 일을 다이어리에 써 놓아야만 마치 숙제를 끝낸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다른 일에 집중하기가 더 수월했다. 그렇다고 매일이  특별한 일로 가득한 건 아니다. 평범한 하루 일과로 채워지는 날도 다반사다. 그렇지만 그 하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위의 이웃이나 직장동료를 만나고 남편이나 아이와 대화도 나누고 TV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서 새로운 사건 사고들을 접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긴 세월의 흔적을 남긴다. 집에 그동안 쓴 다이어리들을 고이 모아 놓았다. 어쩌다 가끔 들춰보면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 생각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 쓰기의 어조나 패턴의 변화도 엿볼 수 있다. 내 인생의 소중한 자산인 셈이다.
 
그동안 일기 쓰기를 꾸준히 하면서 많은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1. 우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강의시간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화두를 던지셨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는 나조차 나를 몰랐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아직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를 안다는 것은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고 매끄럽게 소통할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2. 아울러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현재의 내가 될 수 있다. 나는 ‘getting better’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일기를 쓰면서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각하고 반성도 한다.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연스레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 내 경우, 20대에는 제법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격이었다면 지금은 세월의 연륜과 일기 쓰기의 긍정적인 작용으로 예전에 비해 모난 부분이 둥글해졌음을 느낀다. 내 인격수양에 있어서 일기 쓰기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내 경험에 의하면 일기 쓰기는 치유능력을 가진다고 말하고 싶다. 다이어리에 내 생각과 느낌, 소소한 감정까지도 상세하게 털어놓는다. 다르게 표현하면 내려놓는다. 기쁨과 슬픔 때로는 원망과 분노를. 그렇게 하고 나면 가슴속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와 고통을 현저히 경감시켜 차분하고 편안한 마음 상태, 다시 말해 평정심을 갖게 된다.


4. 일기 쓰기를 통해 복잡한 일들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다른 것을 집어넣을 수 있는 혹은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공간이 생긴다. 즉,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자신감과 적극성의 원천이 된다.


5. 자연스레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킨다. 어릴 적 독후감 쓰는 걸 참 싫어했던 기억이 남아 았는데 성인이 되어 이따금씩 뭔가를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꿈틀거림이 표출되었다. 실제로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게다가 직장에서 업무적인 글쓰기에서도 예전보다 더 다듬어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말 쓰기 뿐만 아니라 영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느꼈다. 다른 언어라 하더라도 큰 틀에서는 연결이 되는 듯하다.
 

6. 다이어리에 기록으로 남겨 놓으면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비하여 보조기억장치로써  필요할 때 꺼내어 회상해 볼 수 있다. 기록을 가진 자는 그렇지 않은 자에 비해 결정적인 순간에 훨씬 유리하다. 요즘 우스갯소리로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7. 글을 쓰는 행위는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기에 일기 쓰기는 사고력 훈련이 되어 두뇌활동을 활발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8. 요즘 손글씨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의 키보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손글씨가 귀한 세상이다.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여러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글씨체가 예뻐지는 것을 발견한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서 키우느라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의 성격, 취향, 장단점, 호불호 등. 비로소 나 자신 앞에 솔직해질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의 껍데기를 한 꺼풀씩 벗겨 내면서 나조차 몰랐던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들추고 싶지 않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도.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드디어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볼 심리적,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요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시기인 듯하다.


주위에 새해가 되면 멋진 다이어리를 사서 연초에 열심히 쓰다가 얼마 안 가서 흐지부지하고 마는 사람들을 더러 보았다. 그에 비하면 난 꾸준하게 쓰는 편이다. 지금도 여전히 일기를 쓴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계속 쓸 것이다. 나의 일기 쓰기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이렇게 좋은 걸 어찌 그만둘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애착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일기 쓰기는 나를 깨어있게 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도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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