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역사 정리! 아테네, 아고라 광장을 거닐면서
최초의 순교자 철학가, 소크라테스를 흠모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흠모欽慕로 격상됨을 느낀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유적지로 남아있는 그곳을 내 인생 최고의 역사적인 답사를 하게 되었다.
시월의 아름다운 날, 파르테논 신전, 니케아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는 곳, 아고라 광장이 펼쳐졌던 그곳에 나의 발걸음이 노닐고 있었다. 2500여 년의 세월이 영상, 책이 아니고 내 두 눈앞에서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듣고 플라톤이 그의 창작 작품들을 버리고 소크라테스의 수제자가 된 그 시절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직도 이 거대한 고대 아테네의 유적지가 - 웅장한 아치, 석주들, 거대한 화강암이 쪼개진 돌들에 새겨진 문양들, 신들과 사람들의 조각품들과 함께 남아있는 것 자체가 인류에게 큰 선물이다.
- 정말이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거대한 고구려 피라미드와 봉분들이 중국 대륙에 묻혀있어 세상에 공개되지 못하는 점들이다. 언제인가 그 자랑스러운 유적지들이 전세계인들에게 개방되기를 소망한다.
아테네 사람들은 페르시아의 대군을 마라톤 전쟁(기원전 490년)에서, 또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테미스토클레스 같은 선견지명이 있는 아테네의 지도자들이 은광산의 발견에서 전쟁의 위기를 준비하여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그렇게 바다에서 해전을 치를 수 있는 군용 배- 갤리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준비한 것이 아테네 해양강국의 힘이 되었다. 당대 세계 최대 강역의 제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의 승리는 아테네 시민들의 승리였고 당연히 시민들의 힘이 커졌다.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민주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시민들의 참여로 투표와 설득, 도편추방제 등의 참정권이 확대된 국가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원형이 되는 시스템을 낳았다.
아고라 광장에서는 언덕 위의 아크로폴리스가 보였다. 아크로폴리스가 아테네, 니케 등의 신전들이 있었던 것과 달리, 아고라 광장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동 장소들이 있었다. 스피치를 위한 장소, 도편추방제와 같은 투표의 흔적들, 회랑 건물들, 상점가의 흔적들, 무엇보다도 광장에 아네테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회합을 할 수 있었던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소크라테스가 활동하였고, 20세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 장소가 있었다. 그들의 삶에 희비극의 메시지를 주었던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었다. 그 모두를 굽어보고 제사를 올렸던 아크로폴리스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 로마에 원형경기장이 있었다면, 그리스에는 원형극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리스인들은 희비극을 상연하면서 그들의 삶을 음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를 냉소적으로 비판하였던 아리스파네스의 희극에 소크라테스 자신이 참여하여 감상하기도 하였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델로스 동맹의 도시 국가들, 폴리스들은 수 백 개가 에게해를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아테네의 경쟁 국가였던 스파르타가 위치한 곳까지 산들과 산들이 겹겹이 둘러서 있기에 도시국가의 경계가 되었다. 그들이 해상 국가로 성장한 것은 올리브 등을 거래하는 해상무역으로 헬라스 지역 전체의 서양 문명의 뿌리를 세웠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까지 물리치고(기원전 499~450년) 델로스 동맹으로 번영하였던 아테네는 서서히 기력을 잃고 만다.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에서 패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후 마케도니아의 부상으로 아테네, 그리스의 독립은 그 후 2000여 년이 지나서 가능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 로마 제국의 점령,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점령, 오스만제국(튀르키예)의 점령까지 이르러야만 했다.
아테네를 수도로 하는 그리스의 독립은 1832년 5월에 이루어진다. 이는 고대 그리스를 낭만주의적으로 지지하였던 유럽의 강대국들의 지원에도 힘입었다. 들라크루아 화가는 시인, 철학가 바이런 경의 영향을 받아서 키오스 섬의 학살과 같은 그리스 문화에 애호적인 작품들을 그렸다. 그전에 영국의 바이런과 해군 장교이자 역사학자인 토마스 고든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애호가들로서 그리스 혁명에 무기를 들고 와서 함께 싸웠다. 그러한 유럽의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낭만주의적 지원이 그리스의 독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는 르네상스를 일으킨 인본주의 철학과 예술, 문학으로 이루어졌다. 거기에 제한적인 시민들의 참여로 운영되던 민주주의 정신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정신문명의 사상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스토아 철학까지 헬레니즘 문명으로 이어지는 인본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이다.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의 독립을 지지하였던 것은 유럽 문명의 창시자들, 그들의 선조들을 위한 노력이었다. 더불어 그리스에서는 수많은 산중 수도원들이 있었는데 깎아지는 산 정상에 외진 곳에 세워졌다.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문화로부터 차별받았지만, 그리스 정교회(비잔틴 교회)를 지켜온 그리스인들의 종교적인 신념들도 유럽 서방 기독교 국가들의 지원을 끌어낸 것이다.
아테네 관광지 곳곳에 예술가들의 거리 공연 (버스킹)들이 즐비하다. 그들을 보헤미안 예술가라고 부르고 싶다. 아테네의 카페, 시장 거리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마다 버스킹 뮤지션들이 거리 예술 문화를 만든다.
돈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영혼들이었다. 청바지가 해어진 채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거리악사들, 그들에게서 각박하게 살아가는 우리들과 대조되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테네 인문학 여행기>를 쓰면서도 아테네 관광객들과 현지 시민들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의 국립 자연공원의 한적한 공원 풍경에서 목가적이고 보헤미안적인 아테네의 여유로운 한때를 즐길 수 있었다. 그 공원에는 유난히 새들의 천국이 된 인공 호수들과 오랜 수령 나무들이 많았다.
고대 아테네의 풍경도 이러하였을 거라고 추측하게 된다. 올리브 나무들이 정말 많이 눈에 들어왔다.
아테네 여신이 선물한 올리브 나무의 열매들이 아테네 해상 무역 거래의 중심 품목이었음을 떠올린다.
아테네인들의 피와 살에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 철학, 과학, 문학을 포함하는 서양문명 최초의 문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동방의 인문학 작가로서 아테네와 아테네인들을 빈틈없이 관찰하고 있음을 저들이 아실까? 그들과 대자연이 모두 커다란 글감의 영감이 된다.
https://blog.naver.com/seolhon/223637204463
(동영상은 원본 <호프맨작가 블로그> 링크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