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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emis Jul 05. 2020

와일드 (Wild, 2014)

영화 와일드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영화화했다. 영화 같은 삶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영화가 되는 삶’이라 생각한다. 우리 삶 속의 진실들은 픽션보다도 더 우연 같고 놀랍고  소름 돋게 감동적이다. 믿을 수 없는 사건들과 인물들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은 그것들이 이 세상 우리의 삶 속 일상 어딘가에 실재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암으로 죽는다. 알코올 중독자에 폭력적인 아빠로부터 도망친 엄마 동생 그리고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엄마는 학대받은 불행한 결혼 생활 후에도 두 아이들이 먹을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가장 따뜻한 밝은 웃음과 조건 없는 사랑을 준 세상의 중심이었던 엄마.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진다. 주인공은 슬픔으로 그녀의 삶에 최악의 방법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무의미한 섹스와 헤로인 중독,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과 낙태, 결국 남편과 이혼을 한 26살의 셰릴 스트레이드(Chery Strayed)는 자신과 삶을 정신없이 엉망으로 만든다. 그리고 1995년 6월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 산맥으로 이어지는 4300km의 대표적인 장거리 트레일을 혼자 걷기로 한다.



화면을 꽉 채운 끝없이 펼쳐진 황야에 작은 피사체가 움직인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가방을 멘 작은 체구의 여성이 걸어간다.  그녀가 짊어진 지나치게 큰 백팩은 해결되지 않은 많은 감정들과 3개월간 혼자 걸어 나가야만 하는 고독의 상징이다.  영화는 트래킹 도중 과거로의 회상 장면이 중간중간 삽입됨으로써 그녀의 의식을 보여준다.


1. 왜 걷기였을까


무엇이든 과정이 있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일련의 행동들, 내딛는 모든 발걸음, 의도하는 작업을 완성하기 위한 모든 단계와 관계하는 결정들이 과정이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기 위한 여행. 부정에서 인정으로, 잃어버림에서 찾음으로, 증오에서 용서로, 슬픔에서 행복으로.  순간 이동은 편리하다. 하지만 삶에는 순간 이동은 없다. 과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배우는 깨달음들, 세계와 내가 연결되어 주고받는 관계 속에 존재함으로써 인생이 이루어진다.


걷기는 과정이다. 여행이다. 그래서 걷기는 인생이다. 삶에서 쌓아놓은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손가락 까닥하는 것조차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인생의 무기력함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필요 없이 기본으로 돌아가 걷는다. 걷기에는 많은 의식의 흐름과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은 자유롭게 배회할 수 있다.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의 흐름이 시작된다. 길 주변의 풍경 하늘 사람에게 시선을 던지기보다 자신의 생각에만 빠질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와 걸음으로써 시선과 의식은 밖으로 향한다. 길을 잃기도 한다. 목적지가 없을 수도 있다. 스스로의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때쯤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새로운 길이 보인다.


If your nerve deny you, go over your nerve.
몸이 너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Emily Dickinson.


트래킹을 시작하는 첫 방명록에 그녀가 적은 시다. 에밀리 디킨슨의  이 시에는 죽음, 자신의 몸, 용기나 의지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신>이 존재한다. 인생의 지하로 추락한 그녀는 시처럼 자신의 몸을 초월해  엄마가 생각했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긴 트래킹을 시작했다.

If your Soul seesaw, Lift the Flesh door. 만약 너의 영혼이 시소를 타면 살점의 문을 열어라.

영화에서 언급되진 않지만 이 시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절이다. 주인공은 파괴된 영혼에 새 공기를 불어넣기 위해 걷기라는 문을 통해 육체를 깨운다. 한 번에 짊어지기도 힘든 무게의 백팩을 하루 종일 매고 다니느라 생긴 온몸의 멍,  비명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발톱이 빠지는 통증, 뜨거운 한낮의 열기와 갈증은 그녀의 모든 신경과 함께 흐릿해진 영혼도 같이 깨운다.


2. 걷는 과정


영화의 도입부, 산 정상의 아름다움 풍경과 고요함과는 대조적인 주인공. 빠져버린 발톱 통증에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절규한다. 더욱이 신발이 산 밑으로 떨어져 버리자 나머지 한쪽 신발까지 던져버린다. 그녀의 비명 소리가 산에 울려 퍼진다.  사람의 제도나 규범이 없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환경은 그녀의 선택이었지만 예측 불가하고 놀라운 일들이 가득하다. 우리의 인생 같다. 낮에 우연히 마주친 방울뱀의 기억은 그날 밤 두려움이 되어 침낭을 세차게 뒤적거리지만 작은 애벌레 한 마리가 나온다. 눈 속에서 발견한 호기심 많은 여우는 다시 돌아오라고 소리쳐 보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포식동물 같은 남자들로 경계심과 의심을 놓지 않지만 간혹 놀랍게도 친절한 사람들로 샤워를 하고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숙소를 제공받는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을 순간들과 그것들을 예상치 않게 희망적으로 다시 회복시켜주는 만남의 반복 속에서 인생의 인관 관계를 본다.  트래킹 사이에 있는 휴게소에서 만난 남자는 그녀의 가방을 '괴물'이라 하며 다시 패킹하는 것을 도와준다. 불필요한 많은 물건들을 덜어낸 그녀의 가방은 마침내 조금 가벼워진다. 제3자의 시선으로 객관화된 도움이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1000km 정도 트래킹을 했을 때쯤 처음으로 여성 도보자를 만나 석양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매일 거기 있었을 자연 그대로 석양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주고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3. 걷기의 끝, 새 삶의 시작


The way out is In - Sadhguru


주인공은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4년 7개월 3일의 시간에 걸쳐 그녀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애도로 인한 정신적 황폐 속에서 길을 잃었던 주인공은 현실적 공간인 트래킹의 황야를 걸으며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출구를 스스로 찾아낸다. 그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무엇하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구원을 받기 위해 걷기를 택한 것이 아니었다. 걷기를 통해 자신이 선택했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선명히 인식하고 자신을 인정한다. 걸으며 자신의 안을 들여다봄으로써 흐릿한 영혼에 안개가 걷히고 자신의 경험과 결정들, 원하든 원치 않든 일어난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다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길로 통하는 문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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