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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emis Jun 11. 2020

콜레트 (Colette, 2018)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 내 이름은 콜레트

 “그 길이 어디로 인도하든 자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찾고, 내면의 확실성에 도달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는 것”

“To seek the way to himself, to reach inner certainty, to grope his way forward, no matter where it led”


영화를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한 구절.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완벽하게 확실한 한 가지. 누구에게나 한 생이 주어진다는 것. 그  삶을 온전히 나 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콜레트는 거의 완벽하게 '진정한 자신(authentic self)'으로 살았다. 남편의 유령 작가로 감금까지 당하며 글을 쓰면서도 저항도 불만도 없는 순종적인 시골 소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고 획기적이고 영향력 있는 문학 작가가 된다. 그녀는 거의 80권의 소설, 회고록, 수필, 드라마, 비평 및 보도를 발표했다. T.S. Eliot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1948년에는 수상 후보로도 지명되었다. 1909년 이후 111년 동안 현재까지 단지 15명의 여성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로 봤을 때 정말 대단한 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무대 공연가, 성과 섹슈얼리티에 각인되어 있는 사회적 통념의 벽에 도전하는 선구자가 된다.  자유로운 영혼의 그녀는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었지만 눈치 보지 않고 최대한 적극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냈다. 


결혼 후 윌리의 유령작가가 된 콜레트

작은 시골 출신의 콜레트는 파리 귀족 출신의 작가 겸 출판업계의 사업가인 윌리(Willy)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파리로 이주한다. 벨 에포크 (Belle Époque) 시대의 파리,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으로 1871년부터 1914년의 파리는 문화적 예술적으로 풍요롭고 다채로웠다. 영화의 도입부 윌리의 대사처럼 파리는 새롭고 특별한 에너지를 창출해내는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로 가득 찼다.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고 많은 문학작품, 음악, 연극 등의 예술 작품이 만들어졌다. 

윌리의 사치스러운 파리 생활을 만족시킬 만큼 그가 쓴 책들은 성공하지 못한다. 그녀는 윌리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남편의 유령 작가가 된 콜레트의 첫 소설 Claudine at School (Claudine à l'école)이 탄생해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다. 콜레트의 어린 시절 추억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소설은 파리의 많은 독자들 특히 젊의 여성들의 마음을 폭풍처럼 사로잡는다. 클라우딘의 이름으로 출시된 다양한 상품들이 파리를 휩쓸고 소설은 무대에 올려지게 된다.

 

콜레트, 윌리, 클라우딘

“My name is Claudine, I live in Montigny; I was born there in 1884; I shall probably not die there.”  - Claudine at School


현실을 반영한 소설은 사람들의 위로와 공감을 얻고 이상적이고 실험적인 인물들은 사람들에게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콜레트가 창조해낸 클라우딘은 콜레트 자신이었다. 다채롭고 신비스러우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회의 고정관념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는 인물. 콜레트의 소설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벨 에포크 (Belle Époque) 소설들을 프랑스 문학에 '새로운 여성상"을 창조해냈다. 결혼과 함께 수반되는 사회적 억압을 거부하고 경제적 독립과 자신의 가치를 위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대를 앞서간 콜레트의 클라우딘은 단지 상상의 인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콜레트의 클라우딘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클라우딘과 같은 드레스를 입고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클라우딘이라고 외치며 열광했다. 너도나도 클라우딘이다. 클라우딘 향수를 뿌린다고 클라우딘이 되지는 않는다. 알맹이 없는 흉내내기다. 멘토는 있되 내 것으로 내면화되어야 한다. "내 이름은 클라우딘"이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을 말해야 한다. 


Missy와 콜레트

 파리의 사람들이 윌리의 성공을 위해 시끌벅적 축배를 들 때, 콜레트는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은 Missy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연인이 되고 Missy는 콜레트에게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한다. 그녀는 Missy의 정장을 입고 윌리를 찾아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할 것을 요구하지만 여성작가의 책은 팔리지 않는다면 거절당한다. 

문학에서 주도적인 여성상이 제시되기 시작했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의 부와 지위는 여전히 결혼에 의존했다. 믿을 수 없지만, 1800년대 이후 200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불법이었고 바지를 입기 위해서는 경찰서의 허가가 필요했다.  투표를 할 수 있는 참정권 역시 1944년에 비로소 획득했다.  

키이라 나이틀리 vs 콜레트

감독 Westmoreland와 그의 오랜 파트너인 Glatzer는 20년 전부터 이 영화를 준비해왔었다. 2001년 그들은 프랑스로 날아가 콜레트의 딸의 조카를 만나기도 했다. 2015년 Glatzer가 세상을 떠난 후 감독은 Pawel Pawlikowski의 Ida와 Sebastián Lelio의 Disobedienc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Rebecca Lenkiewicz와 대본 작업을 하며 드디어 영화를 완성했다.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프랑스 작가의 자서전적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키이라 나이틀리 (Keira Knightley)가 콜레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콜레트를 가장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게 그려냈다. 영화 전반부에 인상적인 장면은 바람을 피우고 파리의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다고 너무나 당당하게 변명하는 윌리에게 그녀는 다부지고 앙칼진 목소리로 외친다.  

I don’t accept it! Go to hell”.  

콜레트의 입체적인 캐릭터는 섬세하게 재현된 20세기 초반의 의상들로 더욱 부각된다. 그녀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감을 표현하기 위해 단순하지만 스타일리시한 의상들이 만들어졌고, 말랐지만 단단한 체형을 가지고 있는 키이라는 의상과 더불어 그녀의 손동작, 움직임, 시선, 춤 동작과 어우러져 콜레트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파리 1935

"아무도 너 자신을 가져갈 순 없어"

No one can take away who you are” 

콜레트의 엄마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녀는 윌리가 채워 놓은 느슨한 목줄을 감고 있는 유령 작가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내 이름은 콜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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