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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Jan 28. 2021

유학생 김지영 말고 엄마 딸 지영이의 시간

한국에 오고 시간 참 빨리 흐른다.

시차 적응은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아직도 해가 뜨면 잠이 들고 해가 질 때쯤 눈을 뜨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자의로 이러는 거 아닌가 싶고.


무기력을 조금씩 벗어나 다시 원래의 낙관적인 나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감히 무기력을 핑계로 시간을 허투루 쓸 때는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다. 엄마를 보면서..


엄마는 참 열심히도 사셨다. 이혼하시고 양육 부담 없던 나를 데려와 먹이고 재우면서 그저 우리 딸 우리 예쁜 딸 같이 있어주어 고맙다고. 그런 엄마였다. 20대의 나는 엄마의 세상 따뜻한 그 한마디에 퍽 속상하고 괜히 짜증이 났다. 그렇게 도망치듯 유럽 교환학생을 갔고, 떨어져서 지내는 반년 간 엄마의 존재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유럽 교환학생은 회피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캐나다 이민은 도망도 회피도 아니었다. 그냥 꿈이었다. 마음 한편에 고이 담아두며 힘들 때마다 꺼내보던 인생의 꿈, 직장에서 궂은일을 할 때마다 버틸 수 있게 해 준 원동력. 그 꿈에 3년간 빠져있던 나는 가장 중요한 걸 점점 잊었다. 인생에서 차지하는 엄마의 중요성이 점점 흐릿해졌다.


캐나다에 갈 때까지 행복한 나에 심취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출국하던 날, 공항으로 가던 아빠 차 안에서 오열을 했다. 옆에서 같이 눈물을 글썽이는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눈물의 이유는 그저 엄마였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늙어있을 까 봐 너무 무서웠다. 엄마 된장찌개 내가 다 먹어줘야 되는데, 엄마 등 내가 밀어줘야 되는데, 엄마 영어 내가 써줘야 되는데, 내 준비만 하느라 나 없는 동안의 엄마를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떠나고 오랜 기간 눈물로 지내셨다. 한창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같이 보던 딸이 떠나고, 엄마는 눈물이 나서 차마 그 드라마를 틀지 못하셨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판데믹, 몬트리올 인종차별 소식을 접한 엄마는 몇 날 며칠을 불면증에 시달리셨다. 악몽도 여러 번 꾸셨다. 결국 나는 짐을 쌀 시간도 없이 캐나다에 남겨두고 몸만 덩그러니 한국에 왔다. 6개월 만에 만난 엄마는 딸이 왔다고 잠도 안 자고 음식을 하셨다. 캐나다에서 하찮은 이방인, 한 푼이 아까운 유학생으로 살다가 귀한 엄마 딸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한국에 갈 때는 '그저 푹 쉬다 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왔는데 엄마를 보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100세 시대에 1/3도 채 못 채웠으니 남은 시간이 더 많지만, 엄마의 인생은 아니었다. 인생의 반은 딸이 가져가 버리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2/3나 차 버린 것이다. 엄마의 남은 시간은 소중하다. 내 시간을 마냥 나만을 위해서 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K-장녀도 K-효녀도 아니다. 엄마를 위해 인생의 목표, 가치관까지 바꿀 수는 없다. 부모님 위한답시고 맘에 없는 결혼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효도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다만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엄마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 주고, 내 시간을 엄마한테 더 투자하고,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하자.


새벽마다 엄마랑 동네 공원을 산책하면서 엄마의 인생 고민을 들었다. 엄마도 노후 걱정을 한다. 엄마의 노후는 온전히 내 몫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늙은 엄마에게도 인생이 있고 혼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려면 한참 멀었다. 40대의 엄마에게도 인생이 있어서 이혼을 택했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도 무려 5년이나 걸렸다. 이렇게 딸은 항상 한 발 늦게 엄마를 이해하며 그 마음을 겨우 겨우 따라간다.


앞으로 몇 달이나 한국에 더 있을지 모르겠다. 인생 계획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엄마에게 섣불리 어떤 약속도 못한다. 다만 하루하루 충실히 엄마 딸로 살아가야지. 캐나다에 돌아가자마자 엄마한테 못한 것부터 생각날 게 뻔한데 하나라도 줄여봐야겠다. 올여름 내 목표는 엄마의 행복, 그 이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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