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저질 체력의 끝을 늘 마트에서 실감했다. 나보다 훨씬 마르고 여린 몸을 가진 동생과 함께 마트를 가면, 그 애는 아무렇지 않게 10kg 쌀포대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고, 나는 그냥 옆에서 지켜볼 때가 더 많았다. '쟤는 나랑 체질이 다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체질의 문제가 아니었고, 단지 누가 먼저 엄마가 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봄
봄이가 우리 가족에게 오게 된 건 2017년 8월 즈음이다. 이젠 제법 나이 든 성견이 되어서 몸무게가 3kg 안팎으로 거의 변동이 없다. 그런 봄이랑 산책을 나갔다가도 혹시나 안아달라고 보채면 잠깐 안아주고 다시 스스로 걷도록 땅바닥에 내려주기 바빴다. 3kg의 무게를 두 손으로 안고 걷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쉽게 들어 올리고 걷다가도 5분 이상이 지나면, 봄이의 몸무게가 점차 늘어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서 봄이가 더 이상 걷기 싫어하거나 나도 봄이를 안아주기가 버거우면, 함께 앉아서 잠시 쉴 곳을 찾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얼마 전의 일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오랜만에 봄이와 산책을 나갔다가 봄이를 안고 걷게 되었다. 한참을 걸었는데, 봄이가 무겁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라, 이게 뭔 일이야?' 엄마가 되고 나서 엄청난 체력 증진을 이루게 되었노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엄마가 되니 체력이 늘었나 봐.' 나는 혼자 콧노래를 부를 듯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얼마 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서는 근육량이 너무 적어서 근육을 늘려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난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지난 180여 일 남짓한 시간들을 추적해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아이의 몸무게는 태어난 순간보다 약 3배가량 증가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매일 아이를 들어 올리고 내렸다. 초기에는 엄지손가락이 쑤시고 아파서 수저를 제대로 잡지 못할 때도 있었다. 너무 유난 떠는 것 같아 남편에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이러다가 펜을 잡기는커녕 엄지손가락을 못 쓰고 네 손가락으로 독수리 타법을 써서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노산의 영향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며, 혼자 감내해야 할 후유증 같은 것이라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나의 몸이 아이의 몸에 맞춰 점차 변화된 듯하다. 어깨 말림은 물론이요, 수술 후 없어졌을 것만 같던 배의 힘도아이를 안을 때는 어딘가에서 솟아난다. 또한 통각에 대해 느끼는 정도에 나름 인이 박힌 것처럼, 아이를 띠에 매고 걷는 일, 기저귀 가는 일, 목욕시키는 일, 안고 재우는 일,의자에 앉혀놓고 밥 먹이는 일 등, 모든 게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나도 제법, 근육이 없어도 깡으로 버틸 수 있는, 엄마가 되어 가나보다. 3kg 무게의 봄이로 가늠해 보건대, 나에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가벼운 무게의 존재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