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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ky May 13. 2020

임영웅 신드롬 어디로?

미스터 트롯 많은 참가자들 중 단연 주목할 만한 인물은 임영웅이다. 경연에서 일등을 해서가 아니다. 트롯을 산뜻하게 닦아 새로운 품격을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트롯의 새로운 품격    


트롯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만든 데는 다른 가수들의 역할도 컸다. 2위인 영탁 덕분에 트롯에 유쾌하고 신나는 노래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3위에 오른 젊은 대학생 이찬원이 부르면 어떤 노래 던 건강한 느낌이 들었다. 테너 성악가 출신인 김호중은 클래씩이라는 트롯 외적 아우라로 트롯의 위상을 올려 주었다. 결선 최종 우승자 7명에 위의 세 사람 외에 정동원 어린이와 젊은 아버지 격의 장민호가 합류하면서 가족적인 그림이 만들어졌고 트롯은 어느덧 애들을 “알로 까지게 하는 유해한 유행가”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트롯의 본령은 밝고 신나는 노래보다는 한 맺힌 감성을 담은 노래들이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트롯은 칙칙하고 저급한 감상의 노래로 취급되어 왔다.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아온 이유다.     

임영웅이 해낸 큰일은 트롯에 담긴 한(恨)의 정서에 품격을 만들어주고  트롯이 값지고 풍성한 감성의 보고라는 걸 재발견하게 해 준 점이다. 감상(感傷)이 과도하고, 유치하거나 남루하다는 선입관을 버리게 했다. ‘바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상사화’, ‘사랑의 미로’ 같은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은 “알던 노래가 아니야. 영 다른 느낌이네” 하며 먹먹해진 가슴으로 감탄을 연발했고 음원을 찾아 반복해 들었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의 지적처럼 “임영웅이 부르기만 하면 노래가 차원이 다른 명곡으로 재탄생하는 일이 벌어진다. 마법 같은 가창력이다”.




트롯과 한(恨)의 정서    


한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이고 트롯은 한의 정서를 품은 노래라 했던가.  우여곡절로 점철된 역사를 거치면서 쌓일 수밖에 없었던 슬픔, 억울함, 원통, 뉘우침, 분노, 아쉬움, 안타까움, 후회, 좌절, 혹은 이들이 서로 얽히고 한데 뒤섞여 응축된 감정이 한의 정서다. 사회제도, 가족제도는 특히 우리의 여성들, 어머니들에게 한이 쌓이게 했다. 트롯이 나이 든 한 많은 여성들의 한풀이 노래로, 비아냥이 섞여 “고무신 부대”의 한탄조 “뽕짝”으로 인식된 이유이다.     


20대 청년 가수 임영웅은 여러 종류의 트롯을 정성스럽게, 새롭게 불러주며 트롯이 우리의 온갖 저리고 아픈 감정을 격조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음악임을 보여 주었다. 가사 전달력 끝내주고 가사 내용에 꼭 맞는 감성을 실어 부를 줄 아는 그가 그의 또 다른 강점인 조근조근 대화하며 달래주듯, 용기를 북돋아 주듯 부르는 노래의 호소력은 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편부 슬하 보다도 훨씬 더 불리한 편모슬하의 어려움과 아픔을 겪었고 치명적으로 얼굴에 길고 깊은 상처가 있는 그가 표현해내는 감정은 진솔해 보여 그만큼 호소력이 컸다. 그런데 반전은 그런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가졌음에도 궁상스럽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해 보이는 귀공자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그 덕분 일가? 그가 부르면 4-50년 전의 “유치한” 트롯이 고상해졌고 과도해 보였던 감상도 절제된 감정 표현의 깊이를 갖게 되었다.     



                             



부르는 태도 역시 주목할 만했다. 맑고 순수한 인상의 20대 청년 가수가 공손하고 진정성 있게 부르는 태도는 어머니들의 한을 존중하고 그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자식들 눈치 보며 흘러간 노래 프로그램이나 행사장에서나 즐기던 그 노래들을 당당하게 느끼고 떳떳하게 아파하고 위로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임영웅의 어머니 팬들이 헌신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큰 백이 되어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젊은 세대의 트롯 관심, 레트로인가 뉴트로인가?    


그런 트롯이 젊은이들이나 식자층에도 새로운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트롯에 대한 관심을 불 피운 것은 지난해의 미스 트롯이었다. 구태의연한 곡조에 EDM 편곡을 가하고 재미있고 세련된 퍼포먼스가 곁들여지면서 볼만하고 들을 만한 것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젊은 층이 대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스터 트롯을 계기로 해서다.    


2019년 가을에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보건사회연구소·행복연구소 공동 주최 국제학술세미나에서 발표된 ‘한국의 울분’ 연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울분 지수가 독일의 4배에 달하고 우리 젊은이들의 울분 지수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고 울분의 정도를 나타내는 울분 점수도 다른 연령대에 비해 크고 심한 울분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도 20대(13.97%)와 30대(12.83%)가 다른 연령대(40대 8.7%, 50대 7.63%, 60대 7.27%) 보다 많았다.(그 원인 분석은 길어 생략한다.) 울분은 오랫동안 한국인 특유의 슬픔의 정서로 여겨져 왔던 ‘한’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젊은 층이 트롯을 듣기 시작한 것은 그들 역시 위로가 필요해진 징후 일가.     


트롯이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인기를 가지고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 그중에서도 여성층이 주를 이룬다.  임영웅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가 이루어낸 트롯의 면모 일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올드 팬들에게 옛 노래의 향수를 충족시키는 복고적 비중이 커 보인다.  여기에만 머문다면 트롯은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꺼져갈 ‘레트로’ 문화가 되고 대중 정서를 과거지향적인 무력감에 빠지게 할 위험도 있다.  임영웅의 초고속 엘리베이터식 상승이 기대와 불안을 함께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그는 명실공히 트롯의 대표주자이고 따라서 트롯 문화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팬 카페에 20-30대 팬 층이 늘어나고 아이돌들이 석권하다시피 했던 음원차트 선두권에 그의 노래들이 포함되면서 젊은 세대의 호응이 커가고 있어 고무적이다. 트롯의 재부상을 젊은 세대가 과거 문화의 특징을 새롭게 포착, 습득해 향유하고자 하는 “뉴트로”적인 현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뉴트로” 문화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현시대의 감각에 맞게 재 단장해서 즐기는 소극적 뉴트로에서  예전 문화의 골격과 특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화 창출의 실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적극적 뉴트로에 이르기 까지.  젊은 세대의 관심은 "적극적 

뉴트로"로 이어질까?

 


K-트롯이 세계로 가기 위해서 


                          

   


미스터 트롯은 “K-트롯,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 걸고 시작했다. BTS의 세계적인 성공을 모델 삼아 트롯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해 보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BTS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이미 익숙한 음악을 바탕으로 블루오션을 찾아낸 경우다. 동남아 지역은 어떨지 모르나 서양 시장 공략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트롯은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적 체험을  토양으로 한 지역적 정서가 두드러지는 노래다.  프랑스 샹송과도 유사하다. 샹송이 독특한 프랑스적 분위기와 감성이 강해 좀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점도 참고할만하다. 관건은 팝, 발라드 등 인접 음악의 경험을 축적한 음악인들이 트롯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창작곡을 만들어 내고 가수들 역시 세계인들의 호응을 얻어낼 새로운 트롯 창법을 개발해 내는 데 있을 것이다.  K-트롯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가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뉴트로의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임영웅에 거는 기대   




임영웅은 최근 사랑의 콜센터에서 루이스 폰시(Luis Fonsi)의 라틴 팝 데스파시토(Despacito)를 불러 시청자들을 환호하게 했고 즉각 1백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의 음악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 지를 확인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임영웅이 트롯 창법으로 그 노래를 새로 불러 낸다면? 그 노래에 세계적 인기를 몰아준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영어 버전을 능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임영웅은 우리를 꿈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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