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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25. 2022

마법사와 머글 사이

몰라서 그렇습니다

위저딩 월드의 빌런들은 높은 확률로 비마법 세계인 머글 세계에 대한 무시를 탑재하고 있다. 해리 포터의 숙적 볼드모트가 어둠의 마법을 탐했던 이유는 영원한 삶을 원했기 때문이었지만 이를 통해 마법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함으로써 머글 세계를 복종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볼드모트의 추종자들은 하나같이 순수 혈통을 중시하는 이들이었으며 순수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슬리데린 출신이 유독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 내 가장 가슴아픈 로맨스의 주인공인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사랑을 결국 이루지 못한 이유도 머글 태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분제에 기초하고 있다. 마법 능력을 기준으로 나뉘는 두 세계는 마치 인종 차별에 대한 비유나 유대인을 박해했던 나치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작가인 J.K.롤링은 현명하게도 삼총사 가운데 가장 똑똑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머글 태생으로 설정함으로써 이 차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설파한다. 물론 롤링은 마법사들은 결국 하나의 가족이며 헤르미온느도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마법사가 존재한다고 언급하기는 했으나 백인과 흑인 혼혈인 오바마 전 대통령도 주로(도 아니라 지극히 높은 확률로) 흑인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헤르미온느의 희미한 마법사 조상은 큰 의미가 없다.


<신비한 동물 사전(이하 <신동사>)> 시리즈의 메인 빌런에 해당하는 갤러트 그린델왈드(매즈 미켈슨 분) 또한 마찬가지로 머글 세계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적으로까지 규정하고 탄압하고자 한다. 이 태도는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하 <신동덤>)>이 시작하자마자 알버스 덤블도어(주드 로 분)와의 만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리키 콜드런이든 호그스미드에서라도 만나면 될 것을 그린델왈드는 굳이 머글이 운영하는 찻집에서 덤블도어와 재회하면서 머글들은 언제나 시끄럽다고 말한다. 터치스크린이 발달한 현대의 머글 세상과 비교해 본다면 아주 뛰어난 마법사 이외에는 입으로 소리내어 주문을 외쳐야 하는 마법 세상이 더 시끄러우면 시끄러웠지 덜 시끄러울 리는 없다. 그린델왈드의 머글에 대한 무시와 편견은 머글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데 지하철을 어떻게 타는지도 잘 모르는 대부분의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런던 지하철 지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는 덤블도어(<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덤블도어는 자신의 무릎에 런던 지하철 지도 모양 흉터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머글에 대해 알고 있기에 이들을 무시하지 않는다. 외려 영화 후반에는 제이콥 코왈스키(댄 포글러 분)에게 머글 게임에 대해 알려달라고 할 만큼 머글 세계에 대해 탐구적인 덤블도어는 사실상 이번 계획에서 무쓸모에 가까운 제이콥을 팀의 일원으로 추대하기까지 한다.



아주 뛰어난 기술은 마법과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현대 IT기술은 위저딩 월드가 구세계를 배경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훌륭한 변명이 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신문지 위에서 움직이는 사진은 머글 관객들에게 신기한 장면이었지만 개봉 20주년이 지난 지금 gif파일, 일명 짤이라 불리는 이미지 파일과 비교했을 때 움직이는 사진은 그닥 신기한 마법이 아니다. 게다가 태블릿PC나 아이패드와 비교하면 아직도 종이를 고수하는 예언자 일보는 환경 파괴에 일조하는 쓰레기 더미다. 해리 포터 시리즈 이후에 나온 <신동사> 시리즈가 프리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후에 기술이 지나치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플라멜을 찾아 온 도서관을 뒤지던 헤르미온느에게 인터넷이 있었다면 해리가 밤에 몰래 금지 구역에 갈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헤르미온느가 부모님 계정으로 성인 인증을 받아 검색했겠지). 얇고 작은 신용카드마저 핸드폰에 넣고 다니며 결제하는 머글들에게 굳이 그린고트까지 직접 찾아가 무거운 금화들을 들고 다니며 결제하는 마법사의 금융 시스템은 오히려 미개해 보일 정도다. 이런 머글의 발달한 시스템을 모르니 머글을 무시하는 마법사가 오히려 머글 눈에는 이상해 보인다.


영화에는 시간상 제약으로 인해 묘사되지 않았지만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아서 위즐리 또한 머글 세상을 신기해하고 머글의 뛰어난 기술에 감탄한다. 해리에게 전화하려던 론은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데 아서 위즐리는 '머글은 마법이 없는 대신 이를 대체할 수많은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메세지 전달에 마법이 걸린 종이 쪽지들이 날아다니는 마법부를 보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머글은 90년대에 이메일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대 학생들이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먹고 마법부에 침입(?)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사원증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웬만한 사기업 시스템이 훨씬 발전적으로 보인다.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아이패드나 태블릿PC에 책을 다운받아 들고 다니며 수업을 듣고, 핸드폰이라는 작은 물건으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결제까지 가능한 현대의 머글 세계를 마법사들이 본다면 자신들이 미개하다며 통탄할 것이다(90년대면 아이패드는 없어도 최소한 깔끔한 노트에 샤프펜슬 정도는 사용했다. 양피지에 깃털펜이라니..). 거기다 집요정을 착취하는 대신 사람을 대신해 일할 AI를 발전시키는 머글들은 생명체에 대한 인식 면에서도 마법 세계보다 한수 위임이 확실해 보인다.



호그와트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법사라는 덤블도어가 머글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는 것은 머글이 마법 대신 발전시켜온 시스템 때문일지도 모른다. 흑인 노예가 해방된 지 한참인 머글 세계와는 달리 마법 세계는 90년대가 되도록 집요정들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무급으로 노동시키며 이들이 일하는 걸 좋아한다고 멋대로 단정짓는다. 헤르미온느가 집요정 해방 전선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마법 세계보다 인권과 동물권이 발전한 머글 세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롤링에 따르면 이후 헤르미온느는 마법부 장관을 역임했다고 하는데 높은 인권의식을 지닌 그레인저 장관이 마법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켰을지는 마법사들보다 머글이 더 잘 알지도 모른다. 덤블도어가 머글 태생의 마법사들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인 이유도 이렇듯 서로 다른 세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결국에는 마법 세계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순수 혈통인 네빌이나 말포이보다도 뛰어난 마법을 구사하는 것과는 별개로 마법 세계에도 다양성은 필요한 모양이다.


우리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점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지나 탄생한 프리퀄 <신동사> 시리즈에서 더욱 강조되는데 바로 주인공인 마법동물학자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 분)를 통해서다. 마법 세계 유일의 마법동물학자인 뉴트는 신비한 동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이들을 이해하고 때로는 마법보다 훌륭한 무기로 활용한다. 소심한 성격과 잘나가는 형의 조합으로 인싸보다는 아싸에 가까운 타입인 뉴트는 마법사보다 신비한 동물들, 나아가 머글과 깊은 우정을 나눈다. (적어도 저서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마법 세계에서조차 크게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던 뉴트가 제이콥과는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도 괴짜 취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콥을 알고 지내며 뉴트는 머글도 마법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세계를 나눈다. <신동덤>에서 뉴트가 데려온 기린을 가장 잘 데리고 놀아주는 건 뉴트를 제외하면 제이콥뿐이다. 마법 세계를 겪고 퀴니를 잃은 후 마법 세계를 거부하던 제이콥도 다시금 마법 세계와 조우하며 마법사들 또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덤블도어의 계획에 기꺼이 말려든다.



마법 세계 설정집에 따르면 머글 세계로부터 마법 세계를 숨기려던 노력이 극에 달했던 과거에는 옵스큐리얼이 발각되는 순간 영원히 격리되거나 심지어는 살해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같은 마법 세계에 속하는 옵스큐리얼조차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숨겨야 할 존재로 인식한 마법 세계의 인권 수준은 처참할 정도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한창인 현대 대한민국 사회를 비추어 보면 옵스큐리얼에 대한 마법 세계의 인식을 비판하기도 낯부끄럽기는 하지만 머글에 앞서 같은 마법사조차 배척하는 이들이 머글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지는 자명하다. 수많은 토픽을 은근히 다루었던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지나 <신동사> 시리즈는 이제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후반부 옵스큐리얼 크레덴스(혹은 아우렐리우스, 에즈라 밀러 분)의 눈을 바라보는 친부의 얼굴은 우리 혹은 우리의 가족이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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