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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May 05. 2021

어린이를 웃게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현재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책이 있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며 아이를 향한 나의 편협한 시선을 반성했고,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향을 간과하지 않았나 의심했다. 아이들과 나의 교집합은 오로지 유전적인 요소와 나의 한정된 유년 시절이 전부인데도 말이다.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채로 책 표지를 덮었지만 그래도 또렷이 남은 감정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이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어린이는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나의 조급한 성격이 금세 드러난다. 특히 우리 둘째 특유의 여유롭고 느긋한 성격은 나를 종종 안달복달하게 만든다. 외출 준비를 이미 마쳐야 하는 시간인데도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으면 내 입에서는 '빨리빨리'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아이가 혼자 힘으로 지퍼를 올릴 때는 기다려주기는커녕 아이 옷 지퍼에 내 손을 뻗는다. 책 속에 나오는 현성이를 보며 나도 저자처럼 얼굴이 빨개졌던 부분이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는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지금도 할 수는 있는데, 아까 현성이가 분명히 '연습했다'라고 했는데.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p.18


어른들도 각자 배움과 성장의 속도가 다른데, 하물며 한참 성장 중인 아이들은 어떤가. 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우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 골고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충분히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허락해 주어 마음에는 충족감으로 차고 넘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물론 학생 신분이라는 것은 어린이에게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학년은 어린이의 학교 교육 과정을 고려한 명명 아닌가?(...) 어린이는 2학년 때 2학년만큼 자라고, 5학년 때 5학년만큼 자라지 않는다. 6학년 어린이 중에도 4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고, 3학년 어린이 중에도 5학년 같은 어린이가 있다. 심지어 한 어린이가 어떤 때는 3학년 같고, 어떤 때는 6학년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어린이의 학년만 중시하는 바람에 어린이가 발달시켜야 할 여러 덕목들 중에서 공부에 대한 것만 강조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의심하고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 p.79



어린이에게 정중하게 대접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좋은 모습을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배움과 성장의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런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 곳은 어떠한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부주의한 행동을 예방한다는 전제하에 생긴 '노 키즈 존'. 어린이를 잠재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으로 짐작하며 입장을 막겠다는 곳에서 배려와 여유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아이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장소가 점점 늘어난다면, 어디서 어떤 배움의 기회를 가져야 하는 걸까.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노 키즈 존’이라는 곳을 보고도 사려 깊고 넓은 마음을 품으며 자라나길 원하는 건 그저 단순한 욕심 아닐까.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가 어른보다 빨리 배운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 우리나라 출생률이 곤두박질친다고 뉴스에서는 '다급히'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린이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어린이가 찾아올까? 너무 쉬운 문제다.

<어린이라는 세계> p.213


아이들을 정중하게 대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 존댓말을 쓰게 되면 대화의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지며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순간 어른에게도 여유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권위는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비로소 진짜 권위가 생긴다.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정중한 대접을 받기 원한다면 어른도 똑같이 어린이에게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린이를 배려하는 언어인지,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행동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p.41



'착하다'라는 말은 누구를 위한 말일까


살아보니 이 세상에 착하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뉴스나 기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무서운 이야기가 가득한 세상, 착한 사람이 약자가 되는 세상이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 그대로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선한 의도와 선한 마음이 이기적인 마음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하고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


착하다' 말로 아이를 구속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 본래의 선하고 착한 마음이 단순히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아를 왜곡하며, 자신의 모습을 거짓으로 꾸미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연약한 존재 아닌가. 아이들이 원치 않아도 어른의 힘에 눌려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착한 어린이'라는 말에는 '남의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남'은 주로 어른들이다. 부모님, 선생님, 산타 할아버지 같은.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 p.33


어린이는 어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저자는 어린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고 있으며 어른과 똑같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이라고 말한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이라고 하는 말도 지양해야 하며, 미래가 아닌 현재를 기준으로 어린이를 대우해 주어야 한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범위라는 것을 배웠다. 아이의 우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의도적으로 울리는 건 아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어른이 어린이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겨 어린이를 '대상화'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 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라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어린이라는 세계> p.227



© rawmintalebi, 출처 Unsplash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주변 지인한테 얻은 육아 노하우와 육아서를 전전긍긍하며 얻은 깨달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러한 얕은 지식과 경험은 어린이들만 가지고 있는 순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알기에 턱없이 부족했음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어린이는 어른의 지식과 경험으로 한정 짓기에 너무나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라는 존재만으로 이미 빛나고 아름답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한번 더 쳐다보아야겠다. 내년에 아이들은 분명 올해와 다를 것이고 지금 떠나보내는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마지막으로 내 주변에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어린이들이 없는지 꾸준히 의식하고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무리 중 한 사람일지라도 어린이에게 웃음을 선물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부려본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비좁은 프레임안에 갇혀 무딘 감각을 가지고 있던 나를 다채롭고 말랑말랑한 어린이의 세계로 초대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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