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관리관으로 행정지원하며 느낀 사유
2주 전 우리 도내에서 신규 공무원 임용 공개경쟁 필기시험이 시행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관내 3개의 학교가 시험 장소로 지정돼 금쪽같은 토요일 휴일임에도 시험관리관인 행정요원으로 지원했다.
공무원 시험만 합격하면 소원이 없겠다던 젊은 시절을 떠올려 봄과 동시에 후배가 될 밀레니엄 세대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간절함에서 오는 열정과 자극을 보고 싶었을게다.
격무와 스트레스에 찌든 지금, 힘든 고비를 또다시 겪으며 퇴직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생각하는 시점에 공무원이 되고자 열망하는 젊은이들과 마주했다. 슬럼프는 지치다 못해 무기력을 동반한 체 찾아온다.
신규임용을 받은 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히 높고 경쟁률이 치열한 건 마찬가지인 듯하다.
부친, 형제들, 형부 등 가족 구성원 중 공무원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넉넉하게 살진 못했지만 공직자 집안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절대 공무원은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었는데...
꿈을 찾아 다른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싶었지만 현실 앞에 여지없이 좌절하고 안정적인 직업군으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이 결정적 계기는 입사 후 2년 만에 사내 커플 부부공무원으로 공무원 가족수를 늘리는데 일조했다. 아이들 아빠는 자녀들에게도 공무원 시험을 은근히 권하는 분위기지만 미술을 전공하는 자녀들 기질 속에 흐르는 예술적 피를 거스른 체 안정만을 위해 강요할 수 없음을 나로서는 절실히 알고 있다.
예술적 성향이 짙지만 우월하지도 못한 나는 스펙도 없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으로 공채 시험에 합격해야 했고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독서실 이용권을 끊어 하루하루 시간을 학습 계획에 맞춰 하루 종일 공부했던 나는 독서실 사장님 아주머니와 종종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크리스천인 것을 아시고 용한(?) 전도사님이 계신데 나중에 오시면 같이 예배드리지 않겠냐고 제안했었다.
어느 날 사장님은 교회에서 심방을 나왔다고 나를 살짝 불러냈다. 큰 반감 없이 함께 예배하던 중 은사를 받았다는 여자분께서 나에게 몇 마디 말을 거시더니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자매님, 이 번 공무원 시험 안 돼요. 자매님은 공무원보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처음 보는 나에게 무슨 연고로 그런 말을 했는지 꼬치꼬치 따지지도 묻지도 못하고 이내 실망하여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울며 거리를 한없이 배회했다.
젊은 아가씨가 대낮에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걸 하늘이 불쌍히 여겼는지 그날은 비가 내렸었고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게 가려 주었다.
정처 없이 떠돌다 지친 나는 놀이터 의자에 앉잖는데 순간 깨달음이 임했다.
"아, 왜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의 말을 믿고 휘둘려 낙망해야 되는 거지?... 내가 믿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그 여자가 하나님도 아닌데 속고 있는 거구나..."(지금 생각해보면 사이비 종교가 아니었을까라는 의심이 든다)
낙망과 방황으로 하루를 날려 보냈지만 큰 깨달음이었고 상황의 긴박함으로 하나님과 딜을 신청했다.
시험을 한 달가량 앞두고 그 여자의 말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또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내 편이 돼 주실 걸 강력히 기도하며 합격하면 공무원 첫 월급을 모두 헌금하겠노라고 서언했다.
만반의 준비로 시험 당일 실력은 물론 최상의 컨디션 관리로 시간 안배를 잘하여 100분의 시간 안에 모든 에너지를 초집중하여 쏟아 넣어야 한다.
공시생 후배들도 여지없이 긴장감 속에 시작종이 울리자마자 시험지 넘기는 소리가 교실마다 일제히 공중으로 퍼졌다.
경쟁률이 높아질수록 업무수행과 이해력이 뛰어난 인재를 고르기 위해 날로 시험지 지문은 길어져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한 답을 골라내야 한다.
업무와 스트레스로 번아웃된 선배 공무원이 30분, 20분, 1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고 종료시간과 답안지 작성할 시간을 예고해 준다.
시험지를 다 풀고 답안지에 마킹을 마친 공시생들의 표정을 보았다. 대다수 무표정했지만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 보이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공부와 경쟁에 지친 공시생들은 이제 결과 앞에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공무원 시험과 전직시험을 치렀을 때 시험지를 받아 문제를 푸는 순간 좋은 느낌이 오기도 한다.
뚜껑을 열어봐야 확실하지만 합격자 발표일에 본인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천하를 얻은 기분은 모두 비슷할 것 같다.
독서실에서 만난 그 여자의 예언이 틀리다는 것을 증명했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히 지켰다.
객지에서 시작한 공직이지만 생활비 한 푼 안 남기고 첫 월급을 헌금하면서 그저 감사가 넘쳤다.
공무원이 되기까지 절박했던 순간의 스토리텔링이 있었음에도 영원한 기쁨이나 만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취업 시험만 합격하면 세상 편하게 살 것 같았는데 어느덧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하느라 불안하다.
오늘날도 많은 젊은이들이 관복을 입기 원해 임용시험에 임하느라 청춘을 바쳐 공부한다. 30년 안정된 보장을 위해서 최소 1~3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은퇴 후 늘어난 노후 40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플랜 B를 미리 바라보고 계획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무원법에 품위유지의 의무가 있다. 물론 행위에 초점을 둔 것이지만 연금만으로 살기엔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누릴 수 있는 품위유지가 될는지 의문이다. 여전히 돈 걱정을 하게 될지...
60세 정년에 맞춰 준비하는 청춘이 아닌 100세를 대비하여 은퇴 후 노년을 걱정하지 않을 인생설계를 젊을 때부터 했으면 좋겠다.
안정만을 추구하다 보면 더 큰 발전과 성장을 멈출 수 있다.
더 멀리 보고 자신의 개성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 선택할 때 더 빛을 발하는 사람도 있다.
꿈과 목표는 자신의 처지에 따라 변하고 성장하는... ing 진행형이다.
애벌레가 몇 차례의 허물 벗기(탈피)를 통해 번데기를 거치면 완전 탈바꿈된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우리도 신세계를 맛보려면 번데기라는 중간단계의 삶 속에서 인내와 선택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