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주훈 삼분의일 대표
에이스침대와 시몬스. 국내 매트리스 시장은 오랜 기간 두 기업이 꽉 잡고 있었다. 한 번 구매하면 10년 가까이 사용하는 매트리스 특성상, 브랜드 인지도를 따지고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다. 그런 매트리스 시장에서 스타트업이 살아남기란,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삼분의일'은 2017년 매트리스 시장에 뛰어들었고 1년 만에 매출 50억 원을 올리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삼분의일 전주훈 대표는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 해외영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홈클'이라는 청소 O2O 플랫폼을 창업한 경험이 있다. 둘 다 매트리스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가 매트리스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삼분의일 본사에서 만난 전 대표에게 삼분의일이 어떻게 매트리스 시장의 틈새를 공략했는지 물었다.
삼분의일, 시작은 '불면'이었다
홈클을 창업한 그는 사업이 쉽지 않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사업은 잘되지 않았다. 홈클을 정리하며 전 대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쉽게 잠에 들지도 못했다. "그전에는 잠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어요. 직접 불면을 겪다 보니 잠의 중요성이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주위를 둘러보니 저처럼 잘 자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자연스레 수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면 브랜드에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장에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던 에이스와 시몬스의 벽을 넘어야 했다. 전 대표는 "창업을 시작할 때 전 세계적으로 큰 트렌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로 스프링 매트리스 중심이었던 매트리스 시장이 점점 메모리폼 매트리스로 재편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프라인 중심이었던 시장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었다.
"국내 메이저 업체들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메모리폼보다는 스프링에 더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기업들도 분명 트렌드가 변하는 걸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메인 비즈니스가 스프링 쪽이다 보니 트렌드가 바뀌는 걸 알면서도 빠르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이 트렌드에 빨리 올라탈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도 시장에 침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메모리폼 매트리스,
국내에서 흥행할 수 있을까?
스프링 매트리스는 스프링 위에 충전재를 추가하는 형태의 매트리스다. 메모리폼 매트리스는 메모리폼의 레이어를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스프링 매트리스는 누웠을 때 스프링이 몸을 받쳐줘 탄성이 느껴지는 반면, 메모리폼 매트리스는 누웠을 때 푹 꺼지는 느낌을 준다. 국내에서는 스프링 매트리스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전 대표는 트렌드가 변화하는 데 확신을 갖고 있었다. 매트리스 자체를 잘 만드는 데에도 집중했다. 그는 "메모리폼 매트리스의 경우 레이어를 어떻게 쌓는지가 중요한데, 시중에 나와있는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살펴보니 고가의 경우에만 레이어를 여러 개 사용했다"며 "우리는 원하는 느낌이 있어 레이어를 다양하게 조합했다. 그게 차별점이었고, 저희가 그 부분에서 선두를 끊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제작한 매트리스의 만족도를 파악하기 위해 50인을 모집했다. 한 달 동안 무료로 사용하게 한 뒤, 마음에 들면 구매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납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전 대표는 "처음 목표는 판매율 50%를 잡았다"며 "50%만 구매해도 시장에 나왔을 때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1달 뒤, 무려 67%의 고객이 매트리스 구입을 택했다. 전 대표는 "이건 만족도 높은 제품이 되겠구나, 느낌이 왔다"고 회상했다.
삼분의일이 매트리스 체험관을 운영하는 이유
삼분의일이 체험관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사 제품을 제대로 경험해보면, 구매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삼분의일 제품은 백화점, 마트 등 오프라인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 오프라인 유통 창구를 많이 만드는 대신 온라인과 체험관에서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다만 체험관에 방문하면 30분간 독립된 공간에서 매트리스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인 디캠프에 있을 때 작게 쇼룸을 만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고객분들이 정말 많이 찾아오셨고 직접 누워보고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 체험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트리스는 만져보고 느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독립된 공간을 조성해 체험에만 집중할 수 있게 했습니다. 체험이 끝나고 난 뒤 제품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있는데요, 고객 만족도가 높더라고요."
전 대표는 "고객분들이 체험관에 오시기 전 어떤 이유로 매트리스를 구매할 예정인지 설문조사를 받는다"며 "그 덕에 그에 맞는 판매 전략을 세울 수 있었고, 그게 기존 브랜드들 사이에 틈새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매트리스인데 타깃이 개발자라고?
창업 초창기 삼분의일이 가장 공을 들인 건 바로 명확한 타깃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전 대표는 "초창기 삼분의일의 주된 타깃은 '자부심을 가진 개발자'였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타깃의 성격과 습관까지 설정했다.
전 대표는 "공대를 졸업하고 IT업계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 분들, 개발자 농담을 좋아하고 IT 전반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나오면 꼭 한 번씩 써봐야 하는 분들, 명품보다 합리적인 제품을 선호하고 과도한 업무로 피로가 쌓여있는 개발자"라고 설명했다. 타깃을 개발자로 설정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브랜딩을 하며 주변 개발자들을 보니, 개발자들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걸 도와주는 데 소비를 아끼지 않더라고요. 키보드, 책상, 의자 등 이런 데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도 오래 쓰는데 생각해 보면 매트리스는 하루 중 8시간이나 쓰는 제품이잖아요. 만약 좋은 매트리스를 사용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 본다면 마음속에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실제로 전 대표는 개발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며 타깃 설정을 잘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 대표는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은 만들지 못한다"며 "타깃을 명확하게 잡고, 그들이 원하는 걸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명확한 타깃 설정은 브랜드 페르소나 설정에도 도움이 됐다. 삼분의일은 자부심을 가진 개발자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떠올리며 브랜드를 의인화한 페르소나를 잡았다. 바로 '뭘 좀 아는 형'이다. 전 대표는 "남성이 많은 곳에 한 명쯤은 있는 뭘 좀 아는 형을 생각했다"며 "모르는 건 이 형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티브 잡스보다는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타입"이라고 말했다.
마케팅을 진행할 때에도 개발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주로 사용했다. 전 대표는 "마치 전자기기를 상담하는 것처럼 매트리스의 스펙을 수치화해 보여드렸고, 개발자분들은 본인들이 주로 가는 커뮤니티에 매트리스 정보를 구체적으로 올려주셨다"며 "직접 바이럴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 개발자 커뮤니티에 입소문이 퍼지며 마케팅 효과를 크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창업 초창기 삼분의일을 찾는 고객은 대부분 개발자였다. 전 대표는 "초기에는 어느 회사의 개발자가 오시면, 다음 날에는 팀원들이 오는 방식이었다"며 "IT 회사에 재직하시는 개발자분들께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사랑받다 보니 초기 타깃이 흐려졌지만, 그래도 타깃 설정 덕분에 초기에 진입을 잘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삼분의일은?
지난 3년간 삼분의일은 개발자들이 주로 찾는 매트리스에서 대중적인 브랜드로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삼분의일은 어떤 모습일까. 전 대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메시지를 다시 명확하게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중적인 브랜드로 변화하며 초기에 설정한 가치와 방향성, 메시지가 흐려진 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스타트업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삼분의일은 기존 매트리스 브랜드 사이에서 혁신가 포지션을 맡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시장에 매트리스 스타트업이 많이 있잖아요. 그 브랜드들과 우리의 차별성이 애매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도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아마존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 삼분의일 제품을 판매할 예정"이라며 "해외 시장에서 저희 메시지 등을 공감해 주시는 고객군을 발굴해 도전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삼분의일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시키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처음 삼분의일을 만들 때 끝까지 수면만 가지고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삼등분해 보면 1/3은 수면, 1/3은 일하는 시간, 1/3은 취미생활을 하거나 휴식하는 시간이죠. 각각의 1/3이 잘 채워지면 결국 더 나은 하루를 만들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인터비즈 서정윤
seo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