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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자 Feb 14. 2023

경계에 선 사람들의 지옥 같은 삶

'경계성 지능장애'가 등장하는 2개의 사건기사


남자와 여자는 직장에서 만났다. 제각기 가정이 있던 둘은 두 사람의 아들들이 친구로 지내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여자가 남편과 다툰 직후 아들과 함께 남자의 집으로 찾아가 의탁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테다.


처음에는 남자도 여자와 여자의 아들을 한가족처럼 대했다. 남자가 쓴 가면은 두 달을 채 가지 못했다. 남자는 비비탄 총으로 여자의 아들 신체 주요 부위를 쏴댔다. 여자에게는 자기 손으로 아들을 때리라고 시켰고, 여자가 그러지 못하자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댔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여자는 남자와 남자의 가족들이 남긴 라면을 몰래 먹었다. 남자와 남자의 아들은 여자를 눕혀놓고 마구 밟았다. 여자는 갈비뼈 여러 개가 부러져 전치 8주의 중상해를 입었다. 또 다른 날에도 몰래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대야 물에 치약과 바디워시를 섞어 머리를 여러 차례 집어넣었다 빼는 물고문을 자행했다. 얼차려 자세를 취하게 한 뒤에 무릎과 배 밑에 압정을 깔아 놓기도 했다.


이 글을 읽다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여자는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아니 도망가지 못했을까. 자신의 남편이나 다른 가족, 하다못해 경찰에는 신고를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판결문을 보면 여자의 지능지수는 70점대로, 인지능력과 사회적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을 지속하려면 주변 인물의 개입이 필요하다. 실제 경험한 사실과 사고과정을 통해 생성한 허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지 '다소 의문이 들 정도'의 상태다. 지적장애를 진단 받은 적은 없었다. 여자는 남자가 휘두른 폭력과 고문에 사로잡혀 '공포'라는 감정 외에는 다른 수단을 떠올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남자가 만든 지옥에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원본기사 : 남긴 라면 먹었다며 전치 8주 폭행에 물고문…지옥같던 두 가족의 동거(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1197898)




소녀는 5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양육권을 포기했고, 보다못한 외조부모가 소녀를 맡아 키웠다. 외조부모는 벌이가 넉넉치 못했고, 소녀는 크고 작은 결핍 속에서 유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런 소녀에게 한 남자가 접근했다. 컴퓨터를 사주겠다거나 미술학원비를 대신 내주겠다며 소녀의 환심을 샀다. 소녀가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남자의 접근법이었다. 남자는 자주 "너 내 딸 할래" "아빠라고 불러 봐"라는 말을 했다.


남자의 접근은 전혀 순수하지 않았다. 남자는 병문안을 핑계로 소녀를 모텔로 불러 강제로 성폭행했다. "딸인데 어떠냐. 같이 씻자"며 소녀가 샤워하고 있는 욕조에 따라 들어가 성폭력을 휘둘렀다. 어느 날에는 성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소녀 역시 지적장애 등급은 받지 않았지만, 지능지수나 사회지수가 또래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태라고 재판부는 판시했다. 남자의 말 뿐인 호의에도 소녀는 정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결핍된 감정을 파고든 '그루밍'은 성범죄자들의 고전적 수법 중 하나다.


원본기사 : 지적장애 청소년에 “아빠라고 불러”… ‘그루밍 성착취’ 징역 7년(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1197686)




판결을 보고 듣기 위해 법원을 드나들면 지적장애를 앓거나 그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대부분은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로 법정에 온다. 일상에 파묻혀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다만 '다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회 곳곳에 제각기 다른 형태로 몸을 웅크린 채 숨어있을 뿐이다. 그런 '다름'은 자주 '취약함'으로 치환된다.


이런 사람들을 가르켜 '경계선 지능장애'라는 용어도 쓴다. 지적장애인에 속하지는 않지만 지능지수가 평균보다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낮고 학습능력, 어휘력, 인지능력, 이해력, 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는 경우에 따라 상당히 평범해 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가까운 주변인 가운데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가 있다. 겉으로만 본다면 무엇이 다른지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특유의 '다름'을 눈치챌 수 있다. 집중력이 부족하다거나 상황판단이 잘 되지 않는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등 양태는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본인이 거부하거나 부모들이 부정하는 탓에 내 주변인도 지적장애와 관련한 진단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지능지수가 얼마인지 모르니 경계선 지능장애에 해당하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진단이 없으니 당연히 치료도 없다. 그는 늘 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해졌는데 (예컨대 일반 중-고교, 군대, 알바 등) 그에게는 매 순간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위기라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때로는 예상치 못한 공격성이 발현될 때도, 때로는 끝없는 무기력으로 반응이 나올 것이다.


이들을 제대로 보살펴줄 부모나 보호인이 없다면 이들은 그야말로 무방비로 노출된다. 위 2개의 기사에 언급된 피해자들도 모든 그런 이들이다. 며칠 사이에 유사한 피해자, 유사한 원인, 끔찍한 피해사실을 써내다 보니 내 마음마저 지쳐버렸다.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종교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기원을 대체로 믿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취약한 이들을 가혹한 상황으로 내몰고 제멋대로 이용하려는 악랄한 사람들이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많다.


장애등급을 받지 않거나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제도권이 품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지원이나 관리, 감독의 근거가 없을테다. 그럼에도 우리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소설이나 영화라 할 지라도 '너무한 설정이다'는 얘기가 나올 학대, 고문, 폭력이 이들에게는 언제든 일상처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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