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기자 Mar 07. 2023

반나절 빠른 [단독]에 대하여

쏟아지는 [단독], 이제는 그만 좀...


행정기관이나 지자체, 경찰, 기업 등에서 꽤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자. 많은 기자들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이 프로젝트 내용을 미리 빼내는 것이다. 이미 보도자료까지 완성된 프로젝트 내용을 어떻게든 가져오기 위해 기자들은 때로 몸과 마음까지 갈아 넣는다. 이렇게 하루 일찍 빼낸 프로젝트의 엉성한 프리뷰 같은 것은 재가공을 거쳐 [단독보도]로 거듭난다.


'남들은 몰랐던 이야기를 우리가 하루나 일찍 빼냈어. 우리 매체의 취재력은 이렇게 대단해'


[단독]에는 대략 이런 의미가 부여된다. 하루면 다행일 경우도 있다. 때때로 발표에 앞서 겨우 몇 시간 빨리 입수한 보도자료에 [단독]을 달아 나가는 보도도 있다. 내용은 보도자료를 거의 복붙 하다시피 했는데도 [단독]이 달린다. '타자 치는 속도가 빨라서 단독을 붙였나'라는 동료 기자들의 비아냥을 사는 보도도 더러 있다.


단독 보도는 물론 언론사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슬로우 뉴스라던가 심층 기획 보도 같은 것이 각광을 받는 시대랄지라도 진정한 단독 보도의 가치는 훼손될 수 없다. 묻히거나 덮일뻔한 사건들이 발로 뛰는 기자들의 단독 보도로 세상에 빛을 받고, 수사로 이어져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를 뜯어고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달의 기자상'이나 '한국기자상'의 시상내역을 보면 그 해를 뒤흔든 소중한 보도들을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럼에도 무분별한 단독이 많아도 너무 많다. '기자가 기사 검색을 안 해봤나' 싶을 정도로, 몇 달 전에 나왔던 얘기와 똑같은데도 단독이 달려 나가는 경우도 있다. 큰 몸통의 너무나도 작은 곁가지들을 건드리거나 덧대면서 [단독]을 붙이기도 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같은 애매~모호한 출처로 시작될 확률이 절반 이상이라고 장담한다.


사실 모든 업계가 자사 상품을 어느 정도 과대 광고한다. '질소를 사면 과자가 덤'이라고 할 정도로 제과업계는 포장지 부풀리기에 열과 성을 다한다. 통신사들도 현란한 수사들을 동원해 자사 통신망의 속도를 광고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소비자들은 과연 얼마나 되겠나.


그래도 언론계는 좀 심하다. 2021년 6월 KBS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하루 평균 66건의 단독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네이버 콘텐츠 제휴 언론사 72곳의 [단독] 표기 보도를 분석한 것이니 다른 인터넷 매체를 포함하면 훨씬 많을 거다. 그 숫자는 2005년에 비해 40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단독 보도를 표기하는 방식의 변화를 어느 정도 감안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어이없는 수치의 증가폭이다. 이 보도도 2년 전이니 지금은 한층 더 늘었을 테다.


기자들이 하루 100건에 가까운 단독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거짓과 비리는 0에 수렴하며 사라졌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기자들도 '단독' 표기를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데 조회수 압박에 시달리는 '윗선'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경우도 많다. 단독이 주는 '뽕'에 취하는 시기는 입사 이후 그리 길지는 않다. 내가 100% 자신할 수 없는 기사에 단독이 달리면 부담스럽고 힘만 든다. 어쩔 수 없는 회사 생활에 고개를 숙여야 할 때면 다른 직장인들처럼 뒷맛이 씁쓸하다. 


독자들이 기사를 읽을 때 '어느 언론사의 단독인가' 둘러보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경쟁 매체의 콧대를 눌러주기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된 불필요한 단독 경쟁은 이제 좀 그만뒀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술자리까지 예절을 따지십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